9화. 사해가 나를 뒤집던 날
아무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을 조용히 떠올려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해를 편안한 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날,
사해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여름 저녁이었다.
해가 기울어 붉은 빛이 물결 위에 길게 번지던 시간.
한국인 두 가정과 함께 사해로 향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
젊고, 가볍고, 세상에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해의 물은 몸을 띄웠고
나는 천천히 물 위에 누웠다.
그때, 같이 온 선배 가이드가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올게.”
그리고 그는 헤엄쳐 사라져 갔다.
나는 혼자 남았다.
‘괜찮아. 나한테는 이 줄이 있으니까.’
‘더 이상 가지 마시오’라고 써 있던
붉은 경계 줄.
나는 그 줄을 붙잡았다.
그 줄은 안전해 보였다.
붙잡고 있기만 하면
나는 괜찮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줄을 쥐는 순간
몸의 균형이 스르르 무너졌다.
하늘이 뒤집혔다.
물이 위로, 하늘이 아래로.
눈과 코와 입으로
매운 짠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 맛은 짠 것이 아니라,
쓴맛이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선명한 두려움 속에서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몸은 물 위에 떠 있었지만
나는 물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행히
함께 왔던 두 명의 한국인 남자분이
나를 끌어올렸다.
물 밖으로 올라왔을 때
나는 크게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떨렸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날 밤,
눈을 감으면
사해가 다시 나를 뒤집었다.
어둠이 무서웠다.
죽는 기분이었다.
그 공포는 누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날의 의미를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안전을 위해 줄을 붙잡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줄이 나를 뒤집었다.
붙잡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놓아야 살 수 있는 순간도 있다.
나는 늘
버티는 법,
잡고 있는 법,
강해지는 법만 배워 왔다.
하지만 사해는
나에게 아주 다른 쉼을 가르쳤다.
힘을 빼도 괜찮아.
물은 너를 떠받칠 수 있어.
쉼은
포기도 아니고,
방치도 아니다.
쉼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다.
“이제, 잠시 맡겨도 괜찮아.”
나는 그날 이후
경계선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쉼에는
거리가 필요하고,
선이 필요하고,
나에게 맞는 한계점이 필요하다.
너무 깊어지지 않기.
너무 멀리 가지 않기.
너무 오래 붙잡지 않기.
쉼은
자유롭게 흐르는 것과
지혜롭게 멈추는 것 사이에 있다.
사해는 그날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가라앉지 않아.
하지만 네가 지켜야 할 선은 너 자신이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