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

보이지 않는 상처가 사람을 만든다

by 봄울

누워 있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


“이제, 어떻게 살까.”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고,
힘을 키워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다.

아이 둘은 남편 곁에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다시 품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죽을 듯이 버텼다.


“악착같이 벌어서, 혼자서 해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를 무시하면서 살겠다.”


그게 나의 의도였다.
분노에서 나온 꿈이었고,
상처에서 자란 목표였다.


그때의 나는
‘성공’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더 차가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다.”


나는 그 말이 진짜라는 걸
몸으로 알았다.


돈을 버는 건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버티기 위해 들고 서 있는 전투였다.

나는 내 힘으로 이기려고 했다.


내가 살겠다고,
내가 증명하겠다고,
내가 빼앗긴 걸 되찾겠다고.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다른 길로 데리고 가고 계셨다.

나는 자주
성경 속 사람들을 떠올렸다.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떠돌던 다윗,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 노예가 되었던 요셉,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약속한 미래를 받기 전에
먼저 부서지는 시간을 지나야 했다.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을
내가 겪고 있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았다.


그 시절의 나를 표현하자면 이랬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 팔로 허공을 젓고 있었지만,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매일 아이들이 그리웠다.
아이들의 머리 냄새, 손의 온기,
잠드는 얼굴,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침묵 속에서 하루를 버텼다.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나 좀 도와주세요.”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짐을 지고 있었으니까.


내 아픔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지육신 멀쩡한 내가
이 정도 아픔쯤은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척하며
나는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알겠다.


나는 나를 도와달라고 말할 줄 몰랐던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댈 줄 모르는 사람.
견디는 법을 너무 먼저 배워버린 사람.

그리고 그건
한편으로 슬픈 강인함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를 버텨서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나를 천천히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하루를 살아내는 것으로

나를 지키고 있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