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도 하나인 마음

7장.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셨다 ― 기억의 하나님

by 봄울

요르단에 살던 어느 날,
나는 한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은 결핵병원이라 불렸지만,
누구든 와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병원은 오래전 한 여성 선교사의 헌신으로 세워진 곳이었다.


그녀는 해외 선교사 가정에서 자란 딸,
즉 MK(Missionary Kid)였다.

그녀의 부모는 과거 한국에서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였다.
그들이 한국 땅에 심은 복음의 씨앗은
세대를 건너, 나 같은 사람의 가슴에도 심겨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의 딸은 복음의 발걸음을 따라
지구 반바퀴를 돌아 요르단의 베드윈족을 섬기러 왔다.


그녀는 의사가 되어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을 치료했고,
돈이 없어도, 신분이 없어도
누구든 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녀가 세운 병원은 지금도 문을 열고 있다.


그녀가 있던 당시,
중동전쟁이 격렬하게 이어졌고
많은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철수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남았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곳이 이곳이라면,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이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을까.
베드윈들은 그녀를 가족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녀가 천국에 간 날,
150명이 넘는 베드윈들이 사막의 바람을 뚫고
그녀의 장례식에 모였다고 한다.


유목민들이 한자리에 그렇게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사랑이 그들 마음에 새겨졌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무덤 앞에 섰다.
결핵병원의 한켠,
올리브 나무가 자라나는 땅 위에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동역자가 발견한 물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올리브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며
그녀의 미소처럼 반짝였다.

그 무덤 앞에 서 있는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의 부모가 한국에서 복음을 심었고,
그 복음을 들은 세대의 한 사람인 내가
이제 요르단에 와서
그녀의 헌신의 열매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 한 생명이었고,
그 기억의 길 끝에 내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을, 시간을, 사명을 잇는다.

한 세대의 눈물이 다음 세대의 소명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헌신이 다른 사람의 걸음을 밝힌다.

그녀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속삭이셨다.


“네가 나에게 약속한 거 기억하고 있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무덤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새겼다.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누군가의 믿음을 이어주는
하나님의 연결점으로 살고 싶었다.


그날 병원을 나서며

바람이 살짝 불었다.
올리브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기도처럼 들렸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분명히 들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를 통해
나의 사랑을 또 누군가에게 전할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다만 마음이 깊어졌다.
그녀의 헌신과 나의 삶,
그리고 하나님이 이어주신 길 위에서
나는 확신했다.
하나님은 기억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기억 안에서,
모든 사랑은 계속된다.


“그녀의 부모가 한국에서 복음을 심었고,
그녀는 요르단에서 사랑을 심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의 길 위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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