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하나님의 눈높이 교육
지난 금요일,
첫째는 스티커북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공부를 하거나 착한 일을 할 때마다 붙여주던 스티커가 이제 단 3장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3장을 얼른 채우고 싶어,
온종일 나를 들락날락하며 물었다.
“엄마, 목마르지 않아요? 물 떠다 줄까요?”
“엄마 어깨 안마해 줄까요?”
“저 오늘 받아쓰기했어요!
스티커 3개 주면 안 돼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2개만 붙이자. 하나는 나중에.”
그러자 아이는 마지막 1장을 더 받겠다는 결심으로 세탁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빨래가 끝나면 세탁기 안에서 꺼내주는 걸 도와주고 1장을 더 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빨래가 끝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그 작은 등이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해 보이던지, 마음이 짠해졌다.
결국 나는 말했다.
“아들, 스티커 줄 테니까 그냥 TV 보고 있어도 돼.”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 스티커를 붙였고,
나는 약속대로 아이가 원하던 장난감을 주문해 주었다. 아들은 빨래 꺼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 오느냐’였다.
금요일 밤에 주문한 택배가
토요일에 올 리는 없는 일.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들, 일요일에 와. 하루만 더 기다리자.”
평소엔 잘 기다리는 아이인데,
그날만은 속상해했다.
“왜요? 내일 안 와요? 더 빨리 올 수 없나…?”
그 마음을 달래야 했고
나는 아이에게 ‘기다림’과 ‘맡김’을 알려주고 싶었다.
다음 날 오전,
몇 달 만에 아이 둘을 데리고
타요 키즈카페로 향했다.
첫째도 신났고, 둘째는 더없이 행복해했다.
하지만 첫째 마음속엔 여전히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엄마, 오늘 라이드킹 올까요?”
나는 아이가 들리도록 작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라이드킹 택배가
오늘 도착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는 기도했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다 했어.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는 거야. 그게 믿음이야.”
나는 택배가 빨리 오기를 바란 게 아니었다.
아이가 ‘맡김’이라는 걸 배우기를,
삶 안에서 믿음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이었다.
두 시간 동안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아이는 다시 물었다.
“엄마, 오늘 라이드킹 오나요?”
나는 또 기도했고,
또 같은 말을 해주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는 거야.”
아이는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 순수한 “네”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시어머니 방에서 나오는 길목에
택배 상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내 화장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기다리던 장난감이었다.
“아들! 하나님이 장난감 보내주셨다!
우와— 하나님 멋지지??”
그 순간 진짜로 놀란 사람은, 사실 나였다.
나는 믿음 충만한 기도를 한 것이 아니었다.
기대하지 않은 기도였다.
그저 아이에게 기다림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마음을 달래주려던 목적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친절하게 응답을 보내주셨다.
마치
“내가 어떤 분인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하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시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한참 웃으셨다.
나는 남편에게도 또 말했고,
다음 날 교회에서도 선생님께 전했다.
아들의 밝아진 얼굴을 궁금해하셔서였다.
복음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경험.
일상을 기적으로 바꾸는 순간.
그런 순간이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주는 것.
나는 기도도 서툴고
믿음도 엉망일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분의 성품을 천천히, 자상하게 알려주신다.
그래서 나는 또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 둘째가 말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응원키트를 만들고 싶은데
저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함께 할 사람을 붙여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언젠가
이 기도 또한
택배처럼 우리 문 앞에 도착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