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견뎌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걸… 어떻게 견뎌야 하나요?”
그 질문에는
살기 위한 절박함과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의지가
조용히 섞여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강해져야지.”
“이겨내야지.”
“너는 할 수 있어.”
그 말들은
듣기엔 멋있지만
막상 상처의 초입에 선 사람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처란,
마음이 부서지는 일이다.
이미 무너진 마음에게
“더 강해지라”고 말하는 것은
쓰러진 사람에게
“뛰어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버티는 힘은
강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게 작게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다.
고통을 견딜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나,
당장 오늘을 다 버티려고 하지 말 것.
오늘 전체를 견디는 일은
지나치게 크고 무겁다.
그러니 마음의 무게를
‘한 시간’으로 잘게 나누는 것이 좋다.
지금 이 시간만 버티는 것.
그 다음엔 그 다음 한 시간.
둘,
내 마음의 구멍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말 것.
상처는 보여준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상처는 ‘안전한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에게만 보여줄 때
비로소 조금씩 아문다.
셋,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조금 이기적이어도 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기대에 응답할 필요도 없다.
넷,
내가 지금 약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약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아프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이지,
약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자책이 절반 이상 사라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지나고 있는 당신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
당신은 이미
이 ‘고난의 대학’의 첫 수업을
감당하고 있다.
숨 쉬는 것,
눈을 뜨는 것,
밥을 먹는 것,
울음이 갑자기 쏟아져서
잠시 주저앉더라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살아내고 있는
작은 기적들이다.
버티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다.
버티는 사람은
이미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이 시간은 언젠가
당신만의 언어가 되고,
당신만의 지혜가 되고,
당신만의 학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