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의 면담

건강검진이라는 이름의 조용한 대화

by 봄울

어제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이라는 단어는 늘 긴장감을 동반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누군가 내 몸을 들여다본다는 사실도
나를 조금 작아지게 만든다.


복부초음파에서는 지방간과 용종 이야기를 들었고,
위내시경에서는 위염과 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찔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데,
지방간이라는 단어는 예상 밖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 가족, 회사, 책임과 의무를 먼저 두고
내 몸을 뒤로 미뤄왔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건강검진은
‘검사’라기보다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몸과의 면담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속에서
내 몸은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좀 봐줘.”
“나도 너와 함께 살아가고 있어.”


사실 두려웠다.


'혹시 더 안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쩌지?'
'내가 너무 방치해 온 건 아닐까?'


그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나는 2주 뒤에 나올 최종 결과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이라도
내 몸을 위한 생각과 배려를
이제는 시작해야겠다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결심과는 다르게 검진이 끝난 뒤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전날 저녁을 가볍게 먹고
9시 이후엔 물도 마시지 않은 채
검진을 마치고 나니
버거킹 햄버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막상 먹어보니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다.
쓴 양파 맛만 남았고,
고기는 종이처럼 얇았고,
균형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남김없이 모두 먹어 치웠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스트레스를

음식을 몸속에 넣으며 풀고 있다는 것을.


그건
내 몸을 위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심한 태도였다는 걸
뒤늦게 인정하게 되었다.


이건 분명
내가 바꿔야 할 태도다.

‘나는 무엇이든 먹어도 된다’가 아니라
‘나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내 몸에 좋은 것을 취하겠다’
이 마음으로.


완벽하게 바꾸지 않아도 좋다.
갑자기 모범생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조금씩
몸을 존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는 것.

그게 이번 건강검진이
나에게 건넨 진짜 메시지 같다.


어제 나는
몸의 상태를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의 상태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건강검진은
몸을 검사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하는 시간이었다.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고요 속에 머물렀을 때
비로소 들린 말이 있다.


“이제는 나도 돌봐줘.”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두려움을 적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늘부터
조금 더 나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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