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자유로워 보이는데
그런데 알게 되었다.
파도는 아무렇게나 움직이지 않는다.
중력이라는 규칙 안에서,
정확한 리듬과 반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유로워 보였던 이유는
규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규칙에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틀을 감옥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파도에게 틀이 없다면
그건 파도가 아니라
그저 흩어진 물일 뿐이다.
그릇이 있어야 물이 담기고
악보가 있어야 음악이 되고
문법이 있어야 말이 된다.
어쩌면 틀은
자유를 막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보이게 만드는 경계인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꽉 채운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
마음 한가운데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
돈도, 성취도, 관계도
잠깐은 덮을 수 있지만
완전히 머물 수는 없는 공간.
그 자리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공허해질 걸 알면서도
사람은 왜 다른 것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할까.
아마도
하나님은 너무 조용하시고
너무 기다리시고
너무 주인처럼 오시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것들은
즉각 반응하고
손에 잡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사람은 악해서가 아니라
그 공허를 그대로 두기엔
견딜 수 없어서
다른 것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채워도 채워도
다시 비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
“거긴 네 자리가 아니야.”
“내가 들어갈 자리야.”
하나님은
그 빈자리를 빼앗지 않으신다.
대신 끝까지 남겨두신다.
우리가 돌아올 수 있도록.
자유로워 보이는 파도는
규칙을 벗어나서가 아니라
규칙 안에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