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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Jun 09. 2022

연필

모든 작가는 연필과 같은 숙명을 타고난다.

연필은 그 존재 의의가 곧 필기구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글쓴이 자신을 꼭 닮아있다. 예를 들면 연필의 흑연이 그러하다. 흑연은 연필의 정체성과 존재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글자를 쓰는 과정에서 연필은 흑연을 통해 비로소 그 자신의 정체성을 종이에 새긴다. 이것은 글쓴이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더라도 그 주제를 풀어내는 글쓴이의 시선과 태도, 감정 등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쓰여지는 모든 글은 글쓴이가 그간 살아온 경험의 총합이자 정수를 담고 있으며, 그 글이 쓰여지기 전까지 글쓴이가 무수히 반복해온 여러 문장들을 하나의 주제로 꿰어낸 결과다. 이처럼 흑연이 종이에 새겨지며 연필의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글에는 글쓴이가 묻어나기 마련이다.


날카롭게 벼려진 연필심과 뭉툭해진 연필심 역시 글을 대하는 글쓴이의 심리적인 태도에 대비된다. 우리는 좀 더 나은 문장을 쓰기 위해 다른 이의 문장을 채집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며 예리하게 자신을 다듬어내다가도 돌연 그 긴장을 잃고 무뎌지고 만다. 글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어제 작성한 문장보다 더 나쁜 문장을 적으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어느 지점엔가 타협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순간이 곧 글쓴이의 마음가짐이 무뎌지는 때인 것이다. 연필심이 종이와의 마찰을 견디지 못해 본연의 날카로움을 잃고 뭉툭해지는 것처럼 글쓴이의 예리함 또한 글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마모되어간다. 달리 어떡하겠는가? 이미 품고 있는 예리함이 무뎌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밖에. 한 편으로는 예리함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럴 때일수록 하루키처럼 매일 같이 꾸준히 쓰는 것이야말로 답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뭉툭해진 연필일지라도 한참을 쓰다 보면 연필심의 한쪽 면에 번뜩이는 날카로움을 품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처럼 글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을 단단하게 다듬는 것이 수월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 그건 글쓴이의 정신이 한껏 날이 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매일 같이 글을 쓰고 다듬는 행위야말로 스스로를 가장 날카롭게 갈아낼 숫돌을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필이 점점 자신의 몸을 깎아내야 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연필은 자신의 생애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아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마치 글쓴이에게 창작의 고통이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단어와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퇴고라는 작업을 통해 각 문장들이 서로 유기적인 연결을 가질 수 있도록 다듬어가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언뜻 보기에 글의 표현을 다듬고 문맥상 불필요한 내용을 없애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 속에는 글쓴이가 들어있기 때문에 글을 퇴고하는 행위는 결국 글쓴이 자신을 깎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글쓴이조차 잘 모르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기도 하며, 때로는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성찰의 계기가 되어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가히 글쓴이가 스스로를 더욱더 '자신답게' 깎아내리는 과정이라 할만하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 자신을 좀 더 온전한 나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깎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필에게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은 연필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때라고 생각한다. 몽당연필이 되었어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글자를 새길 수 있는 때라면 아직 끝이라 할 수 없다. 더 이상 종이에 새길 수 없을 만큼 연필심이 남아있지 않을 때, 더는 종이로 다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다고 스스로 믿게 된 순간이 연필이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 글쓴이 또한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포기하고, 더 이상 문장을 써 내려가지 않게 되었을 때가 글쓴이로서 그가 보이게 되는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나는 글쓴이로서의 삶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딜 가든 내 곁을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내 삶의 모든 순간들에 글쓰기가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 자루의 연필처럼 스스로를 꾸준히 깎아나가고, 내 안에 존재하는 심지가 그 수명을 다할 때까지 내 안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써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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