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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Sep 14. 2022

하루치 "수고"가 건네는 묵직한 질문

수고했어, 오늘도.

때는 2년 전. 새로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내가 도전적으로 감행한 인테리어의 정점에는 바로 타이포그래피가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코드를 작성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문장과 함께해온 사람이고, 잠시나마 책 만드는 일을 하였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디자인과 나 사이의 거리는 한껏 엷어졌다고 해야 할 만큼 희끄무레한 자취만 남아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글자를 조합하고 여백과 어우러지게 하는 일은 내게 있어 영원히 흥미로울 과제다. 이런 아름다움 작업을 알게 해 준 알렉세이 브로도비치에게 감사를. 그런 점에서 보면 벽면의 타이포그래피는 내게 있어 언젠가는 시도하게 될 일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사한 후로 벽면을 장식한 타이포그래피 중 하나는 아주 식상한 위로를 전하는 문구다.


"수고했어, 오늘도."


현관문을 열어 집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글귀가 바로 이거다. 벽면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이 문장은 처음 방문하는 이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더없이 충분하지만 어느샌가 내게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장식이 되고 말았다. 왜, 당신에게도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져서 일말의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만 것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지만 잘 알아채기 어려운 공기 같은 존재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슴푸레 들어온 빛과 함께 찰칵하고 사진으로 남겼더랬다. 그러고 나니 드디어 글자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치 글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 것처럼. 그리고 오늘 이렇게 글을 쓰라는 듯이.


새삼 이 문구를 들여다보며 지난날을 회고해봤다. 내 스스로 "수고했어"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후회 없이 산 날은 며칠이나 될 것인가. 내 오늘은 다시 살아도 똑같이 살만큼 충분했을까? 이런 위로의 말이 내게 타당한지를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다가 문득 하루가 저물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떠올리지 않는 순간들은 행복한 것 같다. 그리고 타인에게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보다 이런 위로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내 삶을 올바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런 수고를 했다며 납득할 수 없었던 날도 분명하게 있었음을 고백한다. 슬럼프가 나를 옥죄어 오던 때, 나는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사람들 입을 모아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낼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모든 것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특히 지난 9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힘을 쓰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발 밑으로는 안간힘을 쓰면서도 별 일 없이 호수 위를 고고하게 떠다니는 척하는 백조 같은 내 자신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모르겠지만 프로젝트 내내 나의 허술함을 다 가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연쇄적이었고 연속적이었다. 잠시 멈춰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느낀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내 문제의 핵심은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지나친 자기 계발 욕심이 부른 화였다. 그 뒤로 나는 많은 것을 접었다. 글쓰기 모임도 그만두고, 뉴스레터를 쓰겠다며 의기양양했던 마음도 잠시 접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사진도 끊었고, 자주 만나던 지인들로부터도 나를 고립시켰다. 삶이, 정리가 필요했다. 열 가지를 시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똑바로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모든 것이 뜻을 품은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정리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수고했어, 오늘도."


다행스럽게도 하루치 수고에 대해 위로를 건네는 이 문장이 더는 버겁지 않게 됐다. 내가 오늘 해낸 일의 가치와, 거기에 쏟아부은 열정을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고"에 대해 생각할 때 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은 말끔히 사라졌다. 한 편, 그렇게 밖에 허둥댈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 또한 위로하고 싶다. 우리는 이따금 실수해서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믿고 싶은 순간들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다음을 살아내다보면 언제고 평안한 때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고 말이지. 이 순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아프고 힘겨웠던 시간에 대한 고백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 그저 잠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당신 또한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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