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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Mar 19. 2024

mitte des lebens

어느 날 갑작스레 매미가 나를 찾아왔다.

2월의 어느 날의 일입니다. 제게 느닷없이 매미가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건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에요. 청량하고 생동하듯 거세게 울려 퍼지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갑작스레 여름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매미가 지치지 않고 쉼 없이 운다는 것입니다. 매미는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었습니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울었습니다. 주변이 조용한지 시끄러운지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하지 뭐예요. 특히 자다가 깨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도 매미 울음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속삭이듯 매미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너의 삶을 지켜볼 거야. 대신 너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게."




#1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어지러움을 느꼈다. 두 다리는 가만히 땅에 붙어있는데 온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경험을 집으로부터 회사에 출근하는 사이 무려 네 차례나 겪었던 것이다. 확실히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적이 없었는데 혹시 뇌졸중인가 싶었다. 허겁지겁 반차를 내어 신경과로 유명한 큰 병원에 가니 의사가 그런다. 환자분 나이에 뇌졸중으로 온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차라리 이비인후과를 한 번 가보세요. 근데 요즘 한창 파업 중이라 저희 병원 이비인후과 진료는 안될 거예요. 그 말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와서도 나는 멀쩡히 걸어지지 않는 내 자신이 섬찟하고 무서웠다. 다섯 걸음에 한 걸음은 내 의지와 다르게 옮겨졌고, 내가 느끼고 제어하는 감각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이 명명백백했다.


당시의 나는 뇌의 문제라는 생각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세 차례 서로 다른 병원의 신경과를 찾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료를 받지 못했다.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간 어느 병원은 신경과 의사가 공석이며 다음 달에 새로 올 예정이라 없다고 말했고, 또 다른 병원은 의사가 파업 중이어서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숨 가쁘게 병원 순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것이 점심 무렵의 일이다.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지만 다시 잘 걸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당장 손써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복귀한 것이다. 걱정 어린 상사의 물음에 경과보고를 하고 다시 평소로 돌아와 업무에 집중했다. 그러고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왼쪽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명은 어쩌다 한 번씩 마주하는 불청객이지만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기에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한데 이번은 달랐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이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반차를 내기도 어중간한 시점이라 상사에게 보고하니 얼른 근처 이비인후과를 가보라 했다.


병원에 가서 증상을 설명했더니 의사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기기를 써서 내 눈을 관찰해 보더니 안진이 있다고 했다. 내 눈의 눈동자가 균형을 잃고 진동하며 한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는 몸의 균형감각이 무너졌음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거다. 이어서 청력 테스트를 했더니 왼쪽 귀의 청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어 있었다. 나는 들리는 족족 들렸음을 알렸는데 사실상 왼쪽 귀로는 고음 영역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은 것이다. 먹먹하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귀가 먹먹하다는 표현이 잘 와닿지 않아서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왼쪽 귀가 평소와 달리 굉장히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압력이 높아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명을 그때 처음 들었다. 의사는 약 처방을 받고 이틀 후 다시 내원했을 때도 문제가 지속된다면 더 큰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현재 상태에서 운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고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피부 질환이 생겨도 1알을 쓸까 말까 싶은 스테로이드 알약을 6알씩 먹도록 처방받은 것도 놀라웠는데 소견서라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병명으로 검색해 보니 돌발성 난청은 1~3일 만에 급작스럽게 청력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단순히 청력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균형감각을 함께 잃는 경우도 많았다. 여러 증상 중 균형감각을 잃는 것이 제일 무서운 부분이었다.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 정점에 치달았을 때는 뱃멀미를 하듯 가만히 앉아있어도 어지럽고 메스꺼움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쯤 되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증상 발현 후 스테로이드를 빨리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약부터 먹었다. 더는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왼쪽 귀에 '삐~~'하는 이명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이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2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연차를 썼다. 돌발성 난청은 조기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중요한 병이라는 말과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통계상 1/3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1/3은 약간이나마 기능이 회복되고, 나머지 1/3은 전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명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귀가 실시간으로 손상되고 있는 것이라는 댓글을 보고 나자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복약지도 받은대로 이틀을 휴식하는 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바로 더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이 나을 것인가.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병원을 수소문하였다. 지인들로부터 각각 두 곳의 병원을 추천받았는데, 요즘 같은 의사 파업 상황이라면 응급실로 가야 진료를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심정으로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모 병원의 응급실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래도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내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응급실 진료를 접수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응급의가 굳은 얼굴로 와서는 말했다. 우리 병원은 이비인후과 진료는 응급실 진료가 안돼요. 안 되는 거 모르고 오셨어요? 그리고 이따 9시에 열리는 이비인후과도 진료가 안될 거예요. 이미 예약한 환자들이 가득한데 그 사람들 말고 환자분을 진료하는 게 말이 돼요?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으면 119에 전화해서 되는 병원을 찾아달라고 하세요. 요즘 파업 때문에 제대로 되는 곳을 정확히 찾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어요.




#3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의 대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다. 예약한 사람들만 환자고 나는 환자가 아닌가? 돌발성 난청은 이비인후과에서 긴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응급상황이랬는데? 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기에 생애 처음 119로 전화를 연결해 보았다. 돌발성 난청인 상황이고, 병원 진료를 받고자 하며 현재 균형감각 때문에 잘 걸을 수 없다 하니 구급차로 호송하겠다고 한다. 병원으로 119를 부르는 일은 뭔가 기묘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다시 병원으로 갈 구급차를 부른다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병원 응급실 밖에서 10여분쯤 기다리고 나자 구급차가 나타났다.


구급대원이 이것저것 물으며 상태를 체크하더니 응급 환자는 아닌 것으로 분류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봐줄 수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어디로 가든 응급실 진료가 된다고 하더라도 환자분은 응급실 기준 우선순위가 높은 환자가 아니어서 응급실 진료가 안되거나 늦을 가능성이 높고, 그럴 바엔 오전 9시가 될 것을 기다려서 접수하는 것이 나은데 또 접수하고 나서 얼마나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자기도 알 수 없다고. 자신들이 병원에 호송은 해줄 수 있지만 환자분이 접수하고 기다려야 하는 건 똑같을 거라고 말했다. 무뚝뚝하기보다 다정하고 걱정 어린 어투였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내가 알아서 병원에 가겠다고 말하자 그는 혹시나 있을 사고를 우려한 것인지 내 거주지의 주소와 연락처를 물은 다음 구급차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약간 슬픈 심정이 되어 주변 가게에서 아침을 우걱우걱 챙겨 먹었다. 병원을 찾더라도 우선 스테로이드 약을 챙겨 먹어야 했기에.




#4


결국 택시를 타고 지인이 있는 병원 응급실로 발길을 돌렸다. 근거는 단순했다. 그가 응급실로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얘기한 것은 그가 속한 병원의 응급실 프로세스는 그렇게 돌아간다는 얘기일 것이고, 적어도 이런 식으로 환자를 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응급의는 나를 진단한 후, 사람을 붙여 내가 받아야 할 검사실로 나를 보냈다. 사람을 붙여 나를 인도하는 건 혹시 모를 넘어짐에 대비한 조치이자 길 안내였다. 나는 어지럼증과 청력에 대한 서너 가지 테스트와 피검사, 소변 검사, MRI까지 모두 찍어보기로 하였다. 이참에 모든 것을 확인해 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MRI에 대한 얘기는 꼭 적어두고 싶다. 이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고, 꽤나 무서운 경험이기도 했다. 자성이 있을만한 모든 물건을 빼고 들어가는데도 왠지 모를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MRI 기계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들려오는 둔탁하면서도 연속된 기계음은 내게 보이지 않는 화살 같은 것들이 무수히 나를 관통해 나가는 듯한 상상을 하게끔 했다. 실제로도 자성을 이용해 세세한 부분들까지 머리를 스캔하는 것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정확한 스캔을 위해 고개를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도 계속 의식해야만 했는데 덕분에 장치 안에 있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다. 엄청난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양쪽 귀에 해주는 보호 장치들 역시 생소했는데 동시에 이러한 보호 장치들이 있음에도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렸다. 30분가량의 고된 시간이 지나 MRI 검사가 끝났을 때 비로소 모든 검사가 끝이 났다.


의사의 진료를 받을 때 보니 청력 테스트 결과 여전히 나의 왼쪽 귀는 들리지 않았고, 균형 감각을 판단해야 할 왼쪽 귀의 신경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여러 테스트 끝에 내가 받은 처방약은 총 다섯 가지로 그중 스테로이드 알약은 한 번에 12개씩 먹도록 처방되어 있었다.




#5


오늘은 사건이 일어난 날로부터 22일이 지난날이다. 스테로이드 알약 처방으로는 호전이 되지 않아 고막에 직접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처방도 받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으로 청각 세포의 손상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스테로이드 처방은 귀 안쪽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몸의 자연 회복을 기대하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지지는 못한다.


왼쪽 귀의 청력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이명은 내 귀 속에서 24시간 내내 계속된다. 나는 고음성 난청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저것 공부해 보니 귀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손상되는 영역이 고음 영역을 듣는 청각 세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명이 들리는 메커니즘은 청각 세포가 주지 못하는 소리 신호를 어떻게든 들으려고 신경계가 애를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TV로 비유하자면 송출되지 않는 채널을 켜둔 TV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송출되지 않는 채널을 켜두면 지지직 하는 잡음이 들리는 것처럼 나의 뇌도 아무런 신호가 없는 곳에서 신호를 잡으려 애쓰다 이명을 계속 듣고 있는 셈이다.


소음이 많은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의식되지만 계속 들려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이것은 외부 자극과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덜 의식할 수 있도록 백색 소음을 틀어두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명에 대한 관심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쉽지 않다. 컨디션에 따라 덜 신경 쓰이는 날과 더 신경 쓰이는 날이 있을 뿐이다. 잠에 들기 위해 누운 순간과 잠에서 나도 모르게 깨었을 때는 나타내는 존재감은 무시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사시사철 내 귓속에서 울고 있을 매미를 꼬옥 품고 살아가기로.




#6


결과적으로 이번 일 덕분에 내 삶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누리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잃어버린 것보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균형감각마저 영영 회복되지 않았다면 내 일상의 상당한 부분을 잃어버린 채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 과연 그것을 온전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의 균형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그동안 자아실현의 욕심에 멀어 건강을 소홀히 하고, 또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거나 방치했던 것을 반성한다. 이제 내 삶은 건강과 운동, 직접 해 먹는 집밥, 온전히 혼자만을 위한 시간 가지기, 내가 먼저 건네는 미소와 친절 같은 것들로 좀 더 풍부해졌다.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주어진 삶의 두 번째 기회. 내 삶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기 전에 알려준 운명의 경고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게 주어진 일상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24시간 내 곁을 함께할 이명은 이 교훈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의 한가운데,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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