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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보명 Nov 19. 2016

파란만장 나홀로 모로코 (끝)

누스누스에 취하다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Le Grand Balcon du Café Glacier

모로코에서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제마엘프나의 한 카페를 찾았으나 식사는 안 되고 음료만 가능하다길래 모로코식 카페라테인 누스누스를 마셨다.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니 생각보다 진해서 놀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와 우유 비율이 1:1(보통 카페라테는 1:4)이란다. 설탕을 저렇게 많이 주는 이유가 있다.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오늘은 제마엘프나의 북쪽 메디나를 거쳐 알모라비드 쿠바, 벤 유세프 모스크, 벤 유세프 메데르사, 사진 박물관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주말 아침의 골목 시장은 비교적 한산하다. 이제 막 문을 열고 점포 앞을 물청소하는 상인들도 있어 혹시나 옷에 튀지 않는지 신경 쓰며 걸어야 한다.


(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알모라비드 쿠바는 주말이라서, 벤 유세프 모스크는 이슬람교 신자가 아니라서 들어갈 수가 없어 바깥에서만 보아야 했다. 알모라비드 쿠바는 마라케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알모라비드(또는 알모라비데, 무라비트) 왕조 시기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알모라비드 쿠바와 벤 유세프 모스크에서 조금만 걸으면 사진에 보이는 골목이 나오고 바로 오른쪽이 벤 유세프 메데르사이다. 입구에서 어떤 남자가 여기 꼭 둘러보고 가라고 호객 행위를 하길래 설마 문화 유적에도 삐끼가 있겠나 싶어 이상한 곳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벤 유세프 메데르사였다.


벤 유세프 메데르사는 14세기에 세워진 일종의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이었으며 1960년까지도 학교로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마치 132개의 방이 있는 감옥과 같은 느낌이지만 전성기에는 800명 넘는 학생들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 메데르사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메데르사 중 하나이며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함께 건축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침에 커피만 마신 탓에 너무 배가 고파 사진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쿠스쿠스를 처음으로 먹어보았는데, 처음에 고기와 같이 먹을 때는 맛있었지만 고기를 다 먹고 쿠스쿠스만 먹으려니 별로였다. 그래도 올리브 같은 반찬들이 있어서 끝까지 다 먹었다.


사진 박물관은 모로코의 역사를 사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건물 자체도 볼 만하다. 특히 옥상에는 카페가 있어 마라케시의 따뜻한 햇살과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전시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찬찬히 둘러보기에 적합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제마엘프나 남쪽에 위치한 바히아 궁전과 다르 시 사이드를 보러 가기로 했다. 모로코의 매력 중 첫째는 물론 사막이지만, 메디나 골목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빼놓고 모로코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특히 나처럼 혼자 여행한다면―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모로코에서 가장 '모로코스러운' 곳이 바로 이곳임을 깨닫게 된다.


일부 단체 관광 프로그램 중에는 메디나 투어가 있기도 한데 이는 두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내가 겪었던 것처럼 메디나를 외국인이 개별적으로 둘러보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만큼 메디나가 모로코 관광의 필수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 아닐까?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보이는 이 사진은 모로코에서의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을 담고 있다. 메디나의 시장을 지나다 한 상점 앞에서 이 사진을 찍었는데, 주인이 이를 보고 처음에는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사진은 자기가 주는 선물이라고, 대신 물건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그냥 사진 지우겠다고 하고 가려고 하니 이번에는 내 팔목을 잡아끌면서 내 시계와 자기가 파는 물건을 맞바꾸자고 했다. 지금까지 삐끼들은 많았어도 내 몸에 직접적으로 손을 댄 것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히아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웅장함과 화려함에 눈이 놀라다가도, 수풀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도 가지고 있어 눈이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마신 누스누스의 영향으로 자세히 보고 느끼지 못했다. 원래 이뇨 작용 말고는 카페인의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몸인데 진한 누스누스를 빈속에 마셔서인지 현기증이 났다. 커피의 효과를 이렇게까지 크게 경험한 적이 없어서 혹시나 내가 마신 게 커피가 아니라 마약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바히아 궁전 근처에 있는 다르 시 사이드를 보러 갔다.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사이트들에서 평점이 높은 관광지여서 보러 갔지만 워낙 화려한 바히아 궁전을 본 직후라 그랬는지 다소 실망스러웠다. 저택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기대했던 느낌의 공간이 아니었다.


다르 시 사이드는 메디나의 골목들 중에서도 안쪽에 위치한 편인데, 왔던 길이 생각나지 않아 구글 맵을 보고 있자 꼬맹이 두 명이 다가와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분명 나중에 돈을 요구할 게 뻔했고 혼자 길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따라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둘이 앞장서서 가는 길이 유일한 길이어서 졸지에 내가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큰길이 나오자 역시나 그 꼬마들은 돈을 달라고 했지만 여태껏 이 나라에서 겪은 일들에 단련이 되어 제법 능숙하게 이들을 뿌리칠 수 있었다.


다른 관광지를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제마엘프나 주변을 구경하고 야시장이 열릴 때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원래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마라케시가 워낙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해서 하루 정도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마엘프나 야시장에서의 야식으로 모로코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 포장마차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오르면서 그 며칠 사이에 모로코에서 겪은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또 오라는 웨이터(?)의 말에 내가 두 번째 왔다고 대답하자 세 번, 네 번 오라고 해 웃음을 준다. 넉살 좋은 요리사는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주시기까지 한다.


모로코에서의 일주일 내내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은, 특히 혼자 다니는 여행은 여유로움이 가장 큰 매력인데 이번에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지나고 나면 기억에 오래 남아 회상할 때 피식 웃게 만드는 것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Purple Camel 호스텔




여행기를 마치며

모로코는 분명 매력적인 여행지이지만 이번 여행기의 제목과 내용이 말해주듯 만만한 곳―이른바 '선진국'―도 절대 아니다. 돌아보면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여행이라기보다 여행과 모험 그 사이 어딘가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먼저, 혼자 여행하는 것은 비추한다. 또한 위생이나 청결, 파리 등에 민감하다면 불쾌한 기억을 가득 안고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사막은 어느 도시에서 가든 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심을 벗어나면 데이터가 안 터진다든가,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해야 한다든가, 호스텔에 콘센트가 몇 개 없다든가 하는 것은 모로코에서는 다른 것들에 비하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함들을 감수할 용기가 있다면, 모로코는 당신에게 가치 있는 여행지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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