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어반 스케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첫 수업 때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여전히 해칭(hatching)은 어렵다. 해칭은 가는 선을 여러 차례 그어서 건물의 음영이나 명암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해칭의 선을 너무 가늘게 할 경우 그림에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너무 굵게 할 경우 그림이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가늘기로 얼마만큼까지 겹쳐서 그려야 하는지가 여전히 어렵다. 특히 건물보다 숲이나 나무를 그릴 때가 가장 난감한데 잎사귀의 풍성함과 그림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어반 스케치 수업은 선생님이 가지고 온 사진들 중에서 한 장을 골라 2시간 동안 사진을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건물 위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는 나무나 꽃과 같은 식물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깨닫게 된 건 그림의 핵심은 드로잉 스킬이 아니라 바로 '관찰력'이라는 점이다. 대상을 얼마나 관심 있게 집중해서 보는지가 그림의 방향과 디테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반 스케치 강좌를 듣기 전까지 이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주변 사물이나 풍경을 볼 때 스케치로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 전시회를 가서도 '이 작가는 나무를 이런 색으로 표현했구나', '사물의 표면을 이렇게 표현했네'라고 의식적으로 조금씩 생각한다. 결국 작가란 사물을 얼마나 깊이 보고, 탐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를 드러내는 사람이니깐.
해칭으로 명암 넣기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강사는 '그림은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대상이 이렇게 생겼다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 테이블 위에 사과가 있어. 사과의 모양은 이렇게 생겼고, 지금 해의 방향이 서쪽이니 그림자는 이렇게 생겼어. 사과의 표면은 왼쪽은 매끄럽고 오른쪽 아래에는 파인 흔적이 있어."와 같은 구구절절한 문장을 한 장의 그림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가능한 자세히 관찰하고 보는 이들에게 해당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그림의 역할이다.
몇 초만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에서 사물의 생김새와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노력은 오롯이 남과 공유할 수 없는 내 것이 된다. 2시간의 결과물인 그림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하나의 그림은 완성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사분면으로 나누고, 소실점은 어디고, 구도는 어떻고, 해칭은 어떻게 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에서 나만의 생각과 개성이 드러난다.
연극 <광부화가들>
그림의 의미를 알려면 직접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
지난 1월에 본 연극 <광부화가들>에 나온 대사이다. 연극은 영국 뉴캐슬의 애싱턴 탄광지대의 광부들의 실제 미술수업으로 바탕으로 한다.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흰 돌덩어리가 경매에서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광부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치러 온 강사는 직접 그림을 그릴 것을 권유한다. 직접 그려보면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지, 작가가 왜 그렇게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제 자신의 삶을 몸소 그렸던 광부화가들인 '애싱턴 그룹'이야말로 존 듀이가 말한 '행함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은 직접 해봄으로써 그림이란 어떤 것이다, 예술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특별히 재능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림을 그려보기 전까지 나도 몰랐다. 공들여 무언가를 골똘히 관찰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예술의 맛을. 무엇가를 알고자 한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해보면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