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안도 건축물의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로 된 꼬불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시실이 나온다.
지중 미술관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첫째, 세 명의 작가 작품이 영구적으로 전시되어 있어 그 작품을 보려면 꼭 거기에 가야 한다는점
둘째,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오롯이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
셋째, 높은 층고와 넓은 크기가 주는 공간감이 생각보다 작품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
넷째, 자연광을 사용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이 받는 빛이나 그림자가 달라 내가 보는 작품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다.
클로드 모네
신발을 벗고 전시실로 들어가면 세 개의 벽면을 가득 채운 모네의 <수련>이 보인다.전시실은 하얀색 벽과 하얀색 타일로 바닥이 장식되어 있다. 조명이 없어 자연광에 의존해 그림을 감상해야 해서 그런지 실내가 약간 어두웠다.
20세기 초 수련이 전시될 때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지금의 형광등처럼 조명이 밝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어쩌면 모네가 작품을 그리고 봤을 때의 밝기와 유사하지 않았나 싶다.
수련은 모네가 말년에 그림을 그려서 그런지 노화된 눈으로 형체가 주는 인상에 따라 그림을 그린듯하다. 그래서 그림의 형체가 뚜렷하지 않고 흘러가듯이 자연이 그려졌다. 보라색과 푸른색 계열의 색이 많았다.
제임스 터렐
터렐의 <Open Field>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다. 6~8명 정도 조를 맞춰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앞의 조가 감상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니 안내요원이 계단을 올라가라고 했다.
계단을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봤던 제임스 터렐을 윌리엄 터너로 착각했다. 왜 그랬지?! 이름이 아주 약간 비슷해서 그랬나.
암튼 같은 조의 관람객과 함께 파란색 빛이 나는 면을 통과해 들어가니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영화를 보다가 화면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빛을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가면 어느 지점에서 안내요원이 멈추라고 했다. 계속 가면 벽면과 부딪힌다고. 빛은 파란색에서 핑크색으로 바뀌고 이곳저곳 직육면체공간 속을 걸었다.
작품은 빛과 직사각형의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단순하다고 볼 수 있는데, 관람객이 그 공간을 체험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했다. 관람객이 작품에 들어가는 순간 작품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공간 안에 있을 때는 외부세계와 단절돼 진공상태에 있는 듯했다.
모네의 수련을 보고 느꼈던 인상보다 체험을 통해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경험이 더 강렬했다. 보는 건 순간이지만 체험은 오감에 저장되어 있으니깐.
월터 드 마리아
셋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3층 높이 정도의 계단의 중앙에 직경 2.2미터 크기의 구가 있다. 구 바로 위에는 천장이 뚫려 있어 자연광이 비친다. 사방의 벽에는 도금된 나무 기둥 세 개가 붙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다. 3층의 천장 위에도 좁고 길게 직사각형 모양의 창이 뚫려 있어 자연광이 들어온다. 해가 있는 위치에 따라 빛이 비치고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이 달라져 공간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었다. 커다란 진공 상태의 공간에 구가 있고 사방에 도금된 기둥이 있는 구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전 같기도 하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우주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절로 holy해지는 곳. 작품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이 주는 영향이 지대함을 느꼈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피라미드를 그렇게 크게 지었나 보다. 크기와 높이가 주는 힘을 무시 못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