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세뇌를 시작하다
아빠의 존재가 내 신체에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그걸 깨닫자 오히려 나는 그 사실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이전과 다름없는 아빠잖아.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아무렇지 않았잖아. 근데 왜 내가 아빠를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데? 아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엄습되자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건 필시 뭐가 잘못 된 게 분명하다. 내가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 단지 담배와 관련해서 일들이 많았고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면서 내 몸에 극한의 스트레스 반응이 생겨서 그런 거라고. 이럴수록 더 아빠를 배려해주고 생각해야 돼. 아빠의 존재가 내게 공포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아니, 담배 때문에 아빠를 무섭게 받아드리는 내 자신이 너무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자식으로서 아빠를 배신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아빠를 내 스스로가 거부한다는 부분을 본능적으로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니라고, 이럴 리가 없다고, 내 몸이 뭔가 오류가 나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오히려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아빠에게 더 신경을 써주기로 다짐했다. 오히려 아빠가 퇴근하면 가까이 다가가서 활짝 웃어주고 옆으로 가서 대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저 멀리 미뤄두고 가족의 분위기를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막 실없는 농담도 던지고 웃으면서 광대처럼 부모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 애를 썼다.
천만 다행인 건데, 어째서 나는 이다지도 불안하고 우울하고 공허한 것인가. 다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 않나. 아빠는 반성하고 사과를 했고, 이해해주기로 했으니, 내가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 게 맞잖아. 그런데 나는 계속 아빠 곁에 있으면 혹시라도 담배 냄새가 날까봐 무서워서 심장이 떨렸다.
아빠는 이전과 다름없이 나의 아빠이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이잖아. 아빠가 네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잖아. 반성도 하고 사과도 했잖아. 고작 담배 때문에 아빠를 무서워하면 안 되지.
이런 내가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모든 게 괜찮아지고 있는 이 때에 스스로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담배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내가 유난스러워서 그런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 존재가 정말이지 이 집에서 한 톨의 먼지 같았고, 쓸모없게만 느껴졌고, 그것이 나를 못내 괴롭게 하였다.
아빠를 무서워하는 신체적 증상은 일시적이라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과 공포심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중되었다. 분명히 엄마와 반려견과 있을 때는 신체적 또는 심리적으로 큰 이상이 없었다.
엄마와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할 때도 때때로 깔깔대며 웃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빠가 오기 한 시간 전부터 나는 초조해지고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고 정신이 멍해져서 무언가 집중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마주하면 입은 웃고 있는데, 속이 막 뒤틀리고, 머릿속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고, 온 몸에 근육이 딱딱하게 경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이 느려지고 어떤 단어가 계속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멍을 때리다가 생각을 해내고는 했다.
아,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스스로 이상이 있다고 느꼈지만 이런 증상을 감히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또 다시 나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끔찍했다. 그렇기에 정신 의학과를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을 부모가 알게 되면 걱정을 하거나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단 염려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란 존재가 가족에게 짐이나 걸림돌이 되는 게 싫었다. 조금이나마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었다.
꿈을 선택했는데 작가 지망생 상태이고, 담배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버린 환자인데, 여기다가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까지 보태지는 게 싫었다. 그렇기에 나는 불안과 우울감이 깊어질수록 강하게 나를 세뇌시켰다.
나만 참으면 아무 문제없다.
지금 모두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그걸 방해하면 안 된다고, 이걸 견뎌야만 예전에 화목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옳은 방향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아빠의 지독한 가스라이팅의 부작용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