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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24. 2023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첫 번째 전투

브런치스토리의 문을 열고 처음으로 머릿속이 하얘져서 당황스럽다. Welcome이라고 써져 있는 발매트에 탁탁 흙을 털고 겨우 현관을 들어섰는데 신발을 벗지 않고 머뭇거리는 느낌이다. 새벽부터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글들이 한 번에 사라진 느낌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갇힌 느낌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를 마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망막함 그 자체이다. 브런치 스토리 문을 열면 늘 대문 앞에 프로젝트 안내문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프로젝트라는 글자는 환하게 불이 들어온 노트북을 더 환하게 빛냈다. 매혹적이었지만 용케도 그 자태에 끌리지 않고 그저 그런 가십거리 듣고 넘기듯 얼마간을 잘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브런치 스토리에 들어갔을 때 작품 4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매일 그리는 시, 나를 담는 일러스트, 단편집, 그림 그리는 류마티스 동거인 이렇게 한 권의 브런치북과 매거진 네 개가 들어 있었다. 나를 담는 일러스트 매거진에는 어느새 서른 개가 넘는 에세이가 들어있었다.


'자신 없는데... 너무 이르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너무 예뻐서 남몰래 간직했던 작은 조약돌의 정체가 다이아몬드이기를 바라게 된 건가 의문도 들었지만 '용기를 내자.' 생각하며 응모의 과정을 시작했다.


준비하는 브런치북의 의도에 맞게 글줄을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세이 몇 개를 더 추가했다. 기한을 확인하니 일주정도가 남았다. 지난 글들의 디테일을 좀 더 들여다 보고 보완을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나중에 합류시킨 글들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한 상태에서 마감당일이 된 것이다. 날짜계산에 실수가 있기도 했다. 부랴부랴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그렇다 보니 세 개의 에세이를 마감 당일 한꺼번에 발행하게 되었다. 글 순서를 다시 정렬하고 응모를 마치는 동시에 맥이 풀렸다.


마감전 일주일이 버거웠던 걸까. 응모를 마치고 난 이후 글이 전혀 써지지 않았다. 아니, 뇌의 중추가 실종된 것처럼 감각은 느려지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색하고 그저 멍했다.


할 수 없이 잠시 쉬었다가 저장글을 열었다. 아직 발행되지 못한 몇 개의 글들이 숨죽여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글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어쩌면 하나같이 모자란 녀석들인지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중 '전쟁'이란 제목의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깊어지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불안과 슬픔을 옮겨 담았던 산문시이다. 몇 번을 다듬었지만 더 진도가 나가지 않아 그냥 두었는데 저절로 손이 갔다. 조금씩 더 수정을 해서 발행버튼을 눌렀다.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첫 번째 총력전을 벌이고 나서 후유증이 온 것임을 깨달았다. 손가락에서 풀려 버리는 근육에 애써 힘을 주며 다시 ㄱ ㅡ ㄹ 글자를 조합해 간다. 더 많은 글을 쓸수록 나의 글이 더 깊어질지 소재가 고갈되어 두 손을 들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겐 chatGPT의 능력이 없으니 전쟁뒤에 오는 보수와 휴식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며 위로해 본다. 일단 현관에서 신발은 벗자.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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