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게을러진 탓에 바람 좋은 늦가을 날씨에도 산책 나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아니, 거의 산책을 위한 걸음을 하지 않는다. 가끔 산책을 나갈 때는 탄천길을 걷는다. 집에서 가까운 탄천은 대로변에서 탄천 옆 산책길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여러 군데가 있다. 직선으로 탄천 옆길까지 곧게 뻗어있는 길, 꼬블꼬블 나무들이 무성한 틈으로 나있는 오솔길,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계단길까지 꽤 잘 만들어져 있다.
집 쪽에서는 어느 길을 선택해도 좋다. 모든 길이 가깝게 나있기 때문에 발 닿는 대로 가서 편한 길로 내려가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오솔길이다.
사람도 거의 없어 찬바람에 흔들리는 큰 잎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타박타박 걷다 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애매한 샛길이 하나 있다. 샛길 앞에는 시간이 느껴지는 허름한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들어오지 마시오.'
울타리도 없는 그 안내판은 제대로 서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세네 걸음만 더 가면 한 사람이 겨우 내려갈만한 폭이지만 계단길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의문이 들었던 이유는 표지판 앞에도 길을 내려갈 수 있는 흙길이 지그재그로 좁게 나있어서였다. 자유와 구속이 함께 존재하는 구역이었다. 계단으로만 다니라는 걸 거야 하고 혼자 결론을 내려버렸다.
슈가 프리(sugar-free)라고 하면 무설탕이라는 뜻이고 스모킹 프리(smoking-free)라고 하면 금연이라는 뜻이다.
한 친구는 중3 때, 외출금지를 당한 적이 많았다. 학교 수업을 자주 빼먹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친구의 부모님은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외출금지를 당한 친구의 반항은 날로 더 심해졌고 오히려 친구의 부모님만 더 골치가 아파졌다. 끝내는 친구와 부모님이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은 하루에 두 시간, 일주일에 열네 시간의 외출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구속 덕분에 이후로 친구는 더 자유로워졌다. 반드시 하루 안에 두 시간을 써야 하며 쓰지 않은 시간은 무효가 된다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열네 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주말이면 방과 후에 훌쩍 여행을 떠나 새벽에야 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다.
자유와 구속은 결국 이용하려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다른 답을 가질 수 있다. 혼란한 세상은 어쩌면 잘못된 말의 표본으로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언어의 유희가 낭자한 세상에서 올바른 지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자유를 핑계로 한 구속이 넘치는 세상에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가 아마도 이미 박탈당한 자유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자유가 자유로운 세상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