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라도
인스타그램에서 좋아하는 어느 작가가 있다. 그녀는 해외의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자신을 주제로 한 그림을 올리거나 갖고 싶은 물건들에 형형색색 컬러를 입혀 몸에 두르고 있는 그림을 자주 올린다.
도시는 주로 여행지로 유명한 곳들이며 하루 이틀 다녀오기에는 열 시간이 넘는 캐나다, 뉴욕, 파리 같은 대도시들이다. 그림은 꽤 구체적이어서 밴쿠버의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림부터 뉴욕의 15번가를 뉴요커인 듯 자연스럽게 걷고 있는 그림, 파리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카프를 날리며 서 있는 그림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녀가 몸에 걸친 그림 속의 액세서리는 주로 명품으로 불리는 샤넬 까르띠에 에르메스 브랜드의 백이나 팔찌, 스카프로 일반적인 가정주부가 편하게 쇼핑하기에는 힘든 물건이다. 디테일을 얼마나 세밀하게 묘사했는지 진품인지 들여다보듯이 머리를 화면 가까이 들이대고 뚫어지게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녀는 일러스트와 함께 '그림에서라도'라고 표현하며 한 줄의 글을 적는다.
그림 속의 그녀는 아름답고 생기 있으며 소녀처럼 설레고 있다.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지 않으면 분화구처럼 깊게 파인 가슴 어딘가에서 터질 듯이 부글대고 있을 것이다. 진정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애가 탈 때 그 감정 속에 잠기지 않으려면 나를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수렁에 갇힌 자신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찌꺼기를 승화시켰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해소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 한 명이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꽤 성실해서 허트로 돈을 쓰는 일도 없었지만 친구의 기준에서 결혼생활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을 벌어왔다.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면 한숨을 쉬며 내게 전화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타 지역에 살면서 오랜 시간 통화만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남자 성인 한 명이 한 팔로도 들 수 있을 것 같은 마른 체질이었는데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쪄 있었다.
알고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밤낮으로 먹으면서 배를 불렸단다. 당연히, 음식은 불만과 불안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심각한 비만이 현재진행형이었다. 무심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나중에 친구는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들어온 급여를 한 푼도 남김없이 자신에게 써버렸다. 급여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나서는 몇 달 치를 모아서 명품백을 사기도 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는 언제든 본인이 원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결혼 전의 생활과 돈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딸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나를 해방시키자
친구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오지랖 넓은 사람처럼 인스타그램의 그녀에게 왜 여행을 가지 못하냐고 묻고 싶었고 정말 명품을 갖고 싶은 건지 묻고 싶었다. 그림으로 보이는 그것들이 진정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기가 더 쉽다. 나는 단 하루라도 그녀와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나를 돌보는 일이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직면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언젠가 엉뚱한 곳에서 위험하게 터진다. 터지는 곳이 마음일 수도 있고 몸일 수도 있다. 그전에 힘들더라도 불편한 마음을 헤집어 보자. 덮고 덮고 또 덮어놓은 해묵은 쓰레기 틈에 상처받고 버려져 있는 나를 해방시켜 주자.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