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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Nov 09. 2023

큰뒷부리도요의 멀리 날기

'쉼'이 있는 삶

맞은편 집 지붕 위에 손바닥만 한 손님이 날아와 앉았다. 우리 집 쪽을 바라보며 꼬록 꼬록 신기한 소리를 낸다. 가끔씩 날개를 파닥이며 비스듬한 회색 지붕을 잘도 걸어 다닌다. 날지 않고 걸어 다니는 도시의 새들을 보면 항상 의아하다. 날개도 쉬어야 할 때가 있는 건가? 도시에 맞게 특화된 걸까?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인생을 추구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멈추지 않는'이 중요하다.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라는 슬로건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오늘도 달린다. 멈추지 않는다.' 또는, '파이팅!'으로 전투적이다. 곁에만 있어도 힘이 날듯하지만 나는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친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그의 전투력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듯이 12 기통 엔진을 돌린다.


그의 엔진은 멈추지 않을까?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잠깐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인생은 결국 외로이 뛰어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이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완급조절도 필요하고 목을 축일 물도 마셔야 한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잘못된 보폭으로 무릎연골 손상의 우려가 있다. 엉덩이나 허벅지 등의 통증으로 찜질과 재활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몸도 정비를 해야 오래간다.


보다 강력한 파워를 원한다면 '쉼'은 오히려 훌륭한 각성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몸을 해치지 않는 훌륭한 보조제이다. '쉼'은 충전뿐만 아니라 새 엔진으로의 교체도 가능하게 해 준다. 잘 쉬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조급함이 사라진다. 조급함이 사라지면 과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쉴 기회를 놓쳤을 때 겪게 되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된다. 지친 인생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전에 자신을 돌보는 게 당연할 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이미 쉴 때가 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휴지기를 갖자.


큰뒷부리도요는 가장 멀리 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나는 이 새의 번식지는 알래스카이다. 실제로 큰뒷부리도요는 시속 60km의 속도로 쉬지 않고 1만 km가 넘는 거리를 난다고 한다. 멀리 날아가기 위해 내장을 비워 몸무게를 줄인다고 한다. 하지만, 무사히 산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서해 갯벌에 들러 충분한 먹이를 섭취해서 지방을 비축해야 한다. 조류보호단체 Bird Life Tasmania의 워홀러 박사는 '만약 새들이 북반구로 돌아오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멀리 날아가는 새도 산란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을 갖는다. 겨우 두 다리로 버티고 살아가는 사람은 위대한 신을 흉내 낼 수도 없고 내장을 비울 수도 날개를 달 수도 없다. 휴식을 갖지 않으면 나를 태우면서 평생을 지워갈 뿐이다. 짧은 여행을 가도 피로를 풀기 위해 발마사지를 받는다. 쉬면서 가자.


나는 전에도 에세이에서 '쉼'에 대해 짧게 거론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한 것 중의 하나가 '쉼'이라는 것을 경험에서 배운 덕에 그 절실함을 잘 알고 있다. 쉬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알지만 맘먹고 휴지기를 가져보자. 굳이 무거운 엔진을 달지 않아도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비축될 것이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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