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에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서 깼다.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존중을 받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 요즘 마음속에 번잡한 일이 많았다. 가슴엔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이 숭숭 뚫고 지나가는 헛헛함 같은 것이 있다. 뭔가 잃어버린 듯이 분실물박스를 뒤적여야 될 듯도 싶고 그렇다. 하루종일 멍하니 초점 없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고 옷들을 산처럼 침대 위에 쌓아 놓고도 치울 생각을 못한다. 마음이 있던 그 자리에 있지 못하니 모든 것이 자리를 잃었다. 글도 거기에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다시 만들어 봐야겠다 결심하는 순간에 갑자기 작은 눈수술을 하게 되었다. 항생연고를 잔뜩 짜 넣은 눈은 내 마음처럼 흐리멍덩하고 뿌옇기만 했다. 하루를 온전히 나 스스로의 힘으로 보낼 수 없다는 그 사실에 번거로웠고 답답했다. 그날이 닷새째 되어 겨우 실눈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금요일이었다. 브런치 연재일이다.
다행히 미리 써서 다듬고 있는 글이 있었지만 좀 더 수정이 필요한 상황에 시야는 여의치 않아 한 줄의 문장도 한 번에 볼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읽으면서 수정할 생각을 하니 깜깜했다. 시야가 좀 뚫린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글을 손보았다. 문맥이 맞지 않아 전체 단락을 지워야 했을 때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연재일을 미룰까를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고민했다. 그럴 때마다 겨우 보이던 눈은 더 흐려지고 손은 바빠지고 에세이를 완성하고픈 마음은 더 깊어갔다. 글은 밤이 다 되어서야 완성이 되었고 브런치에 올려졌다. 전쟁 같은 하루였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싶어서 시작했던 연재였다. 연재하지 않아도 올리는 글에 이왕이면 탄력을 좀 주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수 있는 연재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여러 날 수정하는 버릇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일주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글이 없어서 못 올리는 경우는 없을 테니 충분한 날짜라고 여겼다.
내가 성급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어도'란 아예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까지 고려했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연재글을 올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동시에 마음 하나도 어쩌지 못해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걸까 내면의 부족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나는 새벽에 잠을 깨어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글이 쓰고 싶어졌다. 밤늦게야 부랴 부랴 올린 글을 읽고 라이킷을 해주신 많은 작가님들, 정성 어린 공감의 마음을 올려주신 작가님의 댓글 때문이었다. 지쳐 있는 나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손들에게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내게 글을 쓰게 하는 힘이 항상 내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조차 나를 잃어버린 시간에서 돌아오는 길에 등을 두드려 주신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에 감사한다.
시간에 쫓겨 완성한 것은 글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다시금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