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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19. 2024

미술관 가는 길


나는 소위 취미부자라고 하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관심부자쯤은 될 듯하다. 어느 날 북극곰 생존에 관한 다큐를 보고 환경오염, 멸종위기의 동물, 기후위기라는 이슈에 관심이 갔다. 비슷한 얘기만 나와도 마음이 쫑긋했다. 결국, 소액의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시회를 즐기는 것도 작은 관심에서 출발했다.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날에 켜켜이 쌓여만 가는 상처를 해소할 방법을 찾던 중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게 되었다. 예술 작품이란 그렇다. 그날의 내 심정에 따라 매일 보던 그림도 다르게 보인다. 같은 그림을 여러 번 본다 해도 실은 같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해바라기를 보던 그 우울한 날에 나는 고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시 예전의 평안했던 마음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관심은 취미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심지 굵은 인생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중요한 삶의 철학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관심만 갖다가 가장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된 곳이 미술관이다. 나는 마음에 숨김이 없이 발가벗고 그림을 만난다. 유일하게 껍데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내가 그림을 접하는 순간이다. 내게 그림은 공부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이며 안락의 공간이다. 일부러 특정 작가의 작품만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유명세가 얹어진 작가의 작품만을 찾아가지도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능한 보러 가려고 노력하지만 다양한 느낌의 신인작가 그림을 만나기를 더 좋아한다. 대부분의 신인작가 작품들은 내 머릿속에는 없던 신선한 우주의 장을 만들어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 


다양한 작품을 보는 일은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는 것과 같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시선으로 접한 그림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나의 세상이 별들로 반짝이는 우주가 된다. 어떤 그림은 웃음을 자아내니 좋다. 어떤 그림은 알 수 없어 좋다. 어떤 그림은 꿰뚫어 본 듯이 나를 부끄럽게 하니 좋다. 좋은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집에는 내가 그린 일러스트 몇 점과 구매한 그림들이 뒤섞여 걸려 있다. 집안을 걸을 때 시선을 두게 되는 곳에 한 점씩 자리 잡고 있는데 집이 미술관처럼 되는 그날을 꿈꾸며 인테리어를 했다. 노년에는 내가 가진 작품들로 전시회도 해보고 싶다.


넓은 공간의 작은 허브잎은 진한 향기를 내지 못한다. 가끔씩 톡톡 이파리를 건드려주면 얼마나 강한 향을 품고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관심을 갖다 보니 사랑하게 되고 즐기게 된 것이 많다. 한두 개의 취미도 직업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관심에도 좋음과 나쁨은 있지만 좋은 관심은 분명 나의 영혼을,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거름이 된다. 재작년부터는 독서를 늘리면서 저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출판에 욕심이 생겼다. 지금은 글을 쓰고 있고 책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도 갖고 있다. 나는 지금 새로운 미술관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을 만나고 보게 될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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