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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17. 2024

엄마

엄마는 아침부터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하다. 

"엄마, 식사하셨어?"

"했지, 아침 먹었냐?"

"지금 금방. 울 김여사 뭐 하나 궁금해서 전화했지."

엄마는 특유의 호호 웃음을 웃는다. 엄마의 웃음은 아직도 들뜬 소녀의 그것 같다. 

"아이고, 김여사는 지금 가지랑 체리나무를 심었어요."

고추랑 상추, 호박은 기본이고 엄마는 이제 나무도 심는다. 주차장옆 손바닥만 한 땅에 빌 틈을 주지 않는다. 곧 있으면 엄마의 여름이 알록달록 익어갈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좋아서 꽃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날이고 김여사는 딸이 사준 예쁜 구두라고 아껴 신는 연분홍색 플랫을 신고 성당을 가셨을 거다. 

"얘! 얘! 나 오늘 그 신발 신었잖아. 노인들이 신발 참 곱다 그러고 부러워하더라. "   

엄마는 기분 좋은 소식이 있으면 늘 신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처럼 자랑을 늘어놓으며 칭찬을 기다리는 엄마가 나는 어느 때부터 엄마가 아닌 딸처럼 느껴진다. 내 나이도 들어가니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말 안 듣는 딸이라 때론 골치가 좀 아프다.


내가 엄마에게 그런 딸이니 할 말은 없는데 엄마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된다. 게이트볼 하신다고 무리하고 계신 건 아닌가, 날이 찬데 수영하고 머리는 제대로 말리셨나, 밭일을 너무 오래 하신 건 아닌가......

일부러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쓸데없는 걱정과 잔소리만 심해진다. 실제로 엄마는 내 잔소리가 싫어 전화를 대충 끊기도 하신다. "아이, 시끄러워... 엄마 바빠"


어미고래를 잡는 한 가지 방법은 새끼 고래를 먼저 잡는 거라고 한다. 어미고래는 새끼고래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함께 포획된다는 얘기다. 가끔 엄마를 보면 슬퍼질 때가 있다. 엄마는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참 부지런하고 멋진 사람이다. 그런 욕심 많고 외향적인 엄마가 보수적인 남편을 만나 자식 셋을 낳고 조신한 현모양처로만 살아왔다. 살면서 엄마만의 인생을 찾아가고 싶었던 때가 왜 없었을까 싶다. 내가 엄마에게 새끼 고래였던 건 아닌가 엄마의 깊은 주름을 보면 가끔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올 해에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엄마의 밭에 싱싱하고 먹음직한 식재료가 가득 열리고 예쁜 체리가 달렸으면 좋겠다. 그럼 엄마는 또 내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겠지. "결국 체리가 달렸어. 너 주려고 예쁜 아이로 골라두었으니까 가지러 와. 너무 맛있다." 그리곤 특유의 호호 웃음을 웃으시면 좋겠다. 오늘 성당에서 엄마는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해도 좋을 텐데. 어차피 듣지 않으실 거라 말을 삼켰는데 오늘은 날이 뜨거우니 밭일은 조금 줄이고 솜씨 좋은 아랫집 지영아줌마와 맛있는 음식 해 드시면서 두런두런 얘기나 나누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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