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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27. 2024

연결고리

자주 안경을 하러 가는 곳이 서현역 근방에 있다. 운전해서 20분 정도를 가야 한다. 근처 상가에도 안경원이 있겠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다. 처음 몇 번은 주인의 능력치가 남달라서 실력에 반해 드나들기 시작했다. 보통은 기기로 시력을 한 번 측정하고 나서 도수를 정한 뒤에 안경을 고르는 순으로 진행된다. 그 안경원의 주인은 보통의 안경원 보다 한 두 번 더 측정을 한다. 다음에는 평소에 책이나 노트북을 두고 보는 위치나 거리 또는 운전 여부 등을 자세히 물어본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손가락을 눈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로 세운다. 좌우로 손가락을 움직여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의 위치를 살핀다. 그 과정은 언뜻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굳이 다른 안경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도 주인과 나는 암묵적인 친구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 사생활을 주고받으며 오래된 친구처럼 깔깔 웃는다. 가끔은 고충을 듣기도 한다. 주인의 명랑하고 꾸밈없는 성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인연을 고르는 타입이다. 위트 있는 사람, 세련된 매너가 묻어 나는 사람, 건방짐이 없는 사람, 대화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 등 나만의 조건이 뚜렷해서 가까운 관계를 쉽게 맺지 못한다. 조건이라지만 결국 나름의 가치관과 마음이 통해야 가까운 지인이 된다.


나와 달리 엄마는 만나는 사람 중의 대부분과 친구가 되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너무 열려있는 엄마의 인간관계를 가끔은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다. 딸이지만 사회생활할 때 엄마의 매력을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눈치가 빠르고 배려가 많으신 분이라 그런가 짐작할 뿐이다. 엄마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과 친구가 된다.


동생집 동네에는 산책을 하기 좋은 얕은 산이 아파트마다 연결되어 있다. 엄마는 그곳으로 산책을 다니시다가 벤치에 잠시 쉬고 있는 동네분과 담소를 나누고 친구가 되셨다. 산책 갈 때마다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다 보니 대화가 많아져 친구가 된 것이다. 엄마는 서울에서 다니시던 성당에서 알게 된 특별한 지인도 있다. 지금은 서로 얼굴 보기에도 힘든 사이가 되었지만 항상 전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하신다. 전라도에 계신 한 분은 전에 살던 동네에서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이 보내주는 맛있는 생미역을 받아 드신다.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나누고 안부를 챙겨주는 자식보다 나은 친구가 많다.


그런 엄마를 보면 참 실없다 생각하다가도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순수함과 진정성을 담은 그 마음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 만나든지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연결고리가 있다. 때론 그것이 버젓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예민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지기도 한다. 첫 눈빛을 보고 직감적으로 동질감을 느껴 첫사랑 만난 듯 설레면서 오랜 인연이 되기도 한다.


가끔 억지인연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애쓰거나 과한 스킨십을 하거나 억지로 전화번호를 받아내려 애쓴다. 그런 사람을 보면 호감이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허무한 노력이 가엾기도 하다. 고의적으로 만들어지는 인연은 실익을 따지게 되거나 악연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좋다고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영혼의 깊이가 맞아야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스승의 연을 맺는다. 모든 사람과 적이 아니듯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면 연결고리는 자연스럽게 채워지기 마련이다. 다행인 것은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맞는 인연은 나타난다는 점이다. 친구와 지인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좋은 관계를 맺는 한 사람은 인생에서 꼭 남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으로 인연을 쉽게 맺지 않고 신중하게 연결고리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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