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쓰 May 29. 2024

숨구멍

뜰에 꺾여 쓰러져 있는 꽃 한 송이를 주어와서 화병에 꽂고 물을 먹였다. 시들어가던 여리한 꽃이 제 몸 꺾인 줄도 모르고 꼬박 하루동안 화사하게 피었다가 갔다.


물고기는 물속의 산소를 받아 아가미로 숨을 쉰다. 호흡을 통해 아가미 표면에 새로운 물을 계속 보내주어 물속에 남아있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방식이다. 물을 매질로 하는 호흡법이라 물 밖에서는 당연히 호흡하지 못한다.


나의 호흡을 위한 매질은 글과 그림이다. 갑자기 숨이 막힐 듯이 괴로워 응급실에 실려 가던 날에, 새벽에 문을 열어젖히고 휴대용 산소호흡기로 심호흡을 하면서도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죽는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어떤 신체적인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고 큰 바위에 눌린 듯 갑갑했던 가슴은 다음 날 오후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를 그리고 글을 쓰며 나의 숨구멍을 뚫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은 현실의 나라는 사람과 결별한 듯했다. 나는 나와 나의 영혼을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간이 가면서 적어도 마음이 힘들 때 호흡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세상에 보드라워진 것은 나였으며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있었을 뿐이다.


세상이나 사람이나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내 숨을 스스로 틀어막지는 말아야 한다고 늘 내게 집중한다. 숨틀막(숨을 틀어막는 행동)을 하는 대상을 대하는 방법도 조금씩 터득해 간다. 불가능한 설득을 내던졌다. 화를 내어서 풀어내려고 하는 착각도 접었다. 부서져 재가 되려는 게 아니라면 화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 감정은 내가 다스리는 것.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오더라도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내 일상을 지켜낼 수 있다고 끊임없이 되새긴다.


힘들지 않은 인생도, 힘겹지 않은 사람도 없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나를 지켜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부딪히는 것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힘든 마음을 풀어낼 숨구멍을 만들고 숨을 멈추지 않는다. 내 마음이 여유롭게 숨을 쉬어야 고난의 시간에도 이길 힘을 얻는다. 어떤 때라도 나를 둘 자리는 남겨두고 세상을 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결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