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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31. 2024

그래도 여름은 오고 있다

여름이 걸음을 머뭇거리며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느닷없는 눈까지 내리는 5월에 봄을 몰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지만 선선한 바람에도 반팔을 꺼내 입게 되는 걸 보면 햇살이 제법 뜨거워진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음료를 찾게 되는 날도 많아졌다. 집안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후끈거릴 때가 있다. 봄은 아직 머뭇거리고 여름도 느릿느릿 오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벌써 휴가얘기가 나온다.


"휴가 어디로 가세요?" 

머리를 만져주던 헤어숍 점장이 내게 물었다.

"아직 생각 안 해요. 성수기에는 어딜 다니는 편이 아니라서"

"그렇죠. 저는 어차피 그 시기에는 일이 많아서... 베트남 많이 가는 거 같고... 동남아 요즘 많이 가더라고요."

"저는 습한걸 너무 힘들어해서... 덥고 습한 곳을 여행하면 잠도 못 자고 선호하지는 않아요. 차라리 일본이 나은데 원전사고 이후로는 가기가 꺼려지고... 제주도가 쉬고 오기에는 더 좋은 거 같아요."

"저는 해외여행을 많이 못해봐서... 한국을 벗어나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도 습한 거 너무 싫어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디든 여행하는 거 저는 추천, 어디든 여행해 보세요."

라고 말하며 내가 싱긋 웃었다.

"그래야겠어요... 방금 마음을 먹었네요."


염색과 커트를 하러 갔던 어제도 휴가와 여행얘기를 한참 나누었다. 여름이 오는구나... 생각하며 휴대폰을 열어 날짜를 보았다. 아직 봄인데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는 식탁에 올라오는 나물반찬에서 가장 먼저 느꼈었다. 내가 좋아하는 냉이가 향긋하게 무침으로 국으로 올라왔다. 계절은 신기하게도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클라짓에 정리해서 넣어두었던 여름옷들을 본격적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작년여름에 잘 입었던 파란색 줄무늬 원피스를 가장 먼저 탁탁 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 원피스를 입고 보러 갔던 히사시 조의 콘서트가 떠올랐다. 수준 높은 라이브의 감동으로 가슴이 떨렸던 날이었다. 이웃집 토토로 OST를 플레이했다. 파릇하게 익어가던 여름밤의 추억이 원피스에 묻어 있었구나...


나는 옷차림에서 가장 먼저 여름을 느낀다. 햇살이 바뀌면 저절로 가볍고 밝은 옷에 손이 간다. 아직은 카디건이 없으면 저녁나절은 선선하다. 가끔은 낮에도 바람이 제법 부는 날엔 춥네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5월 초 강원도에 내렸다는 눈의 기운이 지금까지 바람을 타고 오는 걸까? 조금 있으면 반팔 위에 걸쳐 입은 재킷을 저절로 던져두게 되는 여름이 온다.


예전에 알던 지인은 계절이 바뀌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에게 계절의 바뀜은 곧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늙기 싫은데 쓸데없이 해가 자꾸 간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마음이 이미 늙어버린 그는 왜 계절에 적대감을 갖는 건지 의아했다. 나는 계절이 가고 오는 게 좋다. 그 생동감 있는 변화가 좋다. 시간이 가도 낯익은 감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여름은 생동감이 가장 강한 계절이다. 올여름은 무엇을 싣고 올 건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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