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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02. 2024

필라테스

내려다보는 하늘에 얼굴을 맞추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바다빛에 시선을 담근다. 생각이 흔적을 지우며 아스라이 사라진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날씨에도 하늘은 그토록 시원하다.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하늘은 잠시 그대로 머무르다가 흰 구름을 불러 흘러가기 시작한다. 


"숨을 더 깊게 뱉으실 수 있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필라테스 강사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배가 쏙 파이도록 힘을 주며 한가로움을 물리쳤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 배에 집중하고 하늘은 멀어져 갔다.


강사는 계속해서 내 몸을 지배해 가고 나는 하나의 의문 없이 강사의 목소리에 내 몸을 맡긴다. 

"허리만 움직입니다. 등은 그대로 바닥에 있습니다."

나는 가슴을 지그시 눌러 등을 바닥에 붙이려고 애를 쓰며 허리를 조금씩 들어 올려본다. 유연한 몸을 느끼며 나의 정신은 계속해서 배에 집중되어 있다.

"허리만 눌러줍니다. 등은 그대로 바닥에 두고 허리만 움직입니다. 배에는 계속 힘이 들어가 있고 어깨의 힘은 빼고 자꾸자꾸 길어집니다."

강사의 명령어는 분명하면서도 부드럽고 조용하다.


내게 명령을 내리는 강사에게 반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목을 길게 늘어뜨리며 머리끝까지 척추를 타고 오르는 에너지를 느낀다. 가슴은 점점 더 눌러지고 들어 올렸던 허리를 최선을 다해 힘을 빼고 눌러준다. 근육이 탄생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부드러워 자는 듯이 몽롱해지기도 한다. 


내가 몸을 펼치며 누워 있는 곳은 2층의 폴딩도어로 창문을 낸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은 정제미가 있는 공간이다. 필라테스를 하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2층에만 머무른다. 하늘도 폴링도어가 열려 있는 사각의 틀에 갇힌 것이 전부이다. 세상에 있지만 나는 세상에 있지 않다. 나는 오로지 2층에만 존재하며 나의 몸은 내 의지 없이 부드럽고 강한 명령어에만 따른다.


복잡한 일상을 저 멀리 내려 두고 마르고 길쭉한 내 몸에만 집중하며 비우고 또 비운다. 정적인 몸의 움직임이 동적이던 나의 모든 잡념을 집어삼키는 시간이다. 2층의 공간에서 나는 텅 빈 깡통 같은 몸에 근육의 에너지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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