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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04. 2024

사는 맛

일상이 언제나 시처럼 아름답고 단정하게 정제된 그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는 맛'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이 쉽기만 하면 살맛이 없지 않냐'라고도 하고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이게 사는 맛이지'라고도 한다.


내게 '사는 맛'이란 구름 위에 가볍게 몸을 누인 듯한, 삶을 뒤흔드는 거센 진동이 없는 그런 맛이다. 큰 즐거움에 쉽게 감흥하는 마음은 슬플 때도 크게 좌절하기 마련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은 나를 불태우기도 하고 순식간에 얼음조각처럼 얼어붙게도 하면서 극기훈련처럼 마음을 혹사시키기 십상이다. 나는 따스한 햇살 들고 살랑대는 봄바람 같은 잔잔한 휴식이 있는 삶을 원한다. 늦은 아침에 느긋이 글을 쓰며 맞는 하루에 감사한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계절이 훅 들이닥친다.

잠이 덜 깬 눈 속으로

반쯤 벌어진 입속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반대쪽 창문마저 열어

집 안에 갇힌 그놈을 반긴다.

덩달아 어깨춤이 난다.


시간을 넘나드는 파가니니

막춤 추던 우리들 아래로 

바이올린 소리 쨍하게 깔아준다.

흥겨운 아침이다. 


들뜨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부족하다 족하다 심판하지 않으며 담백하게 엮어가고 싶다. 살다 보니 인생에는 다양한 형식과 그림이 필요하더라. 요즘은 일상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있고 기대가 또 기대를 낳는, 한 걸음마다 작은 반딧불이 안내하는 계단을 살살 오르는 느낌이다. 차분히 오르다 보면 어딘가에 다다르겠지 생각하며 발을 내딛고 있다. 거센 파도 없는 바다 위에서 살짝살짝 일렁이며 어디론가 떠가는 느낌이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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