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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09. 2024

드라이브


겨울은 이미 2월이면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고 3월이면 봄 흉내를 내고 4월이면 활짝 핀다. 죽는 날을 기다린다는 어느 노인의 애처로운 얼굴에도 분홍빛을 돌게 하는 그야말로 봄이 된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만 꽃샘추위라는 계절의 한편에서 강원도에는 눈이 내려 버렸고 길거리에는 다시 패딩을 꺼내 입은 사람들이 달팽이처럼 돌돌 말려 걸어가는 날이었다. 물론, 집을 나설 때는 짐작도 못했지만 말이다.


집안에 들이차는 햇살에 속아 하얀색 티셔츠에 파란색 니트카디건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갈 생각이었다. 공동현관을 나서면서 훅 불어오는 찬 바람에 아차차 싶었지만 발걸음이 멈추지 않아 잰걸음으로 주차장까지 들어가 그대로 차에 올라타버렸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오픈했다. 지하 주차장에서는 좀 아까 느꼈던 그런 추위는 당연히 느낄 수가 없었다. 유유희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으- 춥다. 속도는 겨우 30킬로 체감온도는 그냥 한겨울이었다. 일단 모자를 덮어쓰고 버텨보기로 했다. 출발해서 서서히 기어가듯 나가는데 길거리에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바람보다 부끄러움이 더 춥게 느껴졌다.


차를 돌릴까 하다가 무슨 고집인지 오히려 속도를 더 내었다. 세네 개의  사거리를 지나고 나서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유턴을 했다. 다시 신호등에 걸려 속도가 줄자 이때다 싶어 열려있던 지붕도 닫았다. 드라이브는 20분 만에 끝났다.


집에 돌아오자 에취, 에취, 재채기가 쏟아졌다. 꼭 몸으로 느껴야만 계절을 알까? 외출 전에 미리 온도와 공기질을 확인하지 않는 내 버릇에 된서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집안의 온도를 올리고 숨을 내뱉었다. 죽는 줄 알았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리고 햇빛이 닿는 소파에 앉았다. 나는 때에 맞는 옷을 입었고 때에 맞는 놀이를 찾아 나갔는데 계절이 계절을 모른다. 난데없이 눈을 부른 봄은 부끄러움도 없이 매몰차게 바람을 불어댔다.


따뜻한 찻잔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고 오분정도 히터도 틀었다. 몸을 녹이면서 온도를 다시 보고 sns를 보다가 강원도 눈소식을 읽으면서 그럼 그렇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런 날은 집에 있어야 했어 하며 차를 호로록 마셨다. 초봄의 드라이브는 뒤늦은 후회 하나를 떨구며 그렇게 끝나고,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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