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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09. 2024

어느 봄, 아침 여섯 시


아침 여섯 시.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정결한 여신)가 작업실에 눕듯이 퍼진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스르르 눈을 감아본다. 어제 낮에 본 목련나무 정령이 바닥에 떨구어 놓은,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꽃잎이 생각난다. 주차장을 벗어나 봄냄새가 물씬한 길 쪽으로 나왔는데 어느새 꽃잎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틀전만 해도 가지 끝에서 도도하게 벨벳드레스를 자랑하던 꽃잎이 바닥에서 갈색으로 초라해져 가고 있었다. 여전히 보드라운 꽃잎을 보며 죽은 새를 닮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고개를 들어 목련나무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다행히 아직은 하늘 위로 곧게 뻗은 목련이 적지 않게 살아 있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려니 살짝 아래로 휜 가지 끝에 고상하게 피어있는 모습이 왈츠를 추는 여인을 닮은듯했다. 나가고 돌아올 때 내가 만나는 이 목련나무는 402동 어느 집 베란다 창 앞에 서있는데 그 옆집은 지금 내부수리 중이다. 요사이 종일 지이잉 하는 소리 쾅쾅 대는 소리가 나는 집이다. 난리통에 목련나무는 괴롭겠지만 나무를 마주한 집의 주인은 우아하고 탐스러운 목련으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집주인은 봄이 되고 목련이 만발한 것을 안온한 아침에, 봄햇살이 거리를 물들인 한낮에 한껏 만끽한 적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벚꽃나무집에서 왼쪽으로 돌면 나오는 내 집 앞은 나무가 많아 살짝 그늘이 졌는데 거기에는 감나무와 벚꽃나무가 서있다. 가을에는 감나무가 주홍빛 그리움으로 익어가고 봄이면 화려하게 벚꽃나무가 핀다고 했다. 내가 이 집에서 봄을 맞이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다림에 많이 설레었다. 조팝나무인가 싶은 나무와 소나무도 심어져 있다. 푸릇푸릇한 나무가 많아서 한 그루의 벚꽃나무가 더 도드라져 보일 거라고 늘 생각하며 기다려왔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벚꽃은 봉오리가 맺혀 있었는데 밤사이에 봄을 터뜨렸다. 벚꽃이 피어서 여기에도 마침내 봄이 왔구나 하는 즐거움에 젖는 찰나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하루도 보지 못한 내 이웃 벚꽃이 다 져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하늘을 한 번 쳐다 보고 창문에 찰싹 붙어 벚꽃을 한 번 살펴보고.


하늘이 참 얄밉다. 입을 삐죽 내밀며 벚꽃과 안쓰러운 눈빛을 교환하고는 부엌으로 갔다. 엉덩이를 덴 듯 펄펄 끓는 물의 온도를 잠깐 식히고 찻잔에 부었다. 티백을 한 번 씻김을 하고 나서 다시 한번 가득 부었다. 컵받침 위에 가지런히 올려 들고 와 책상 앞에 앉았다. 짧은 봄이다. 봄을 기록하자. 여름이 되어 후회하지 않도록. 겨울이 되면 사진과 글을 넘겨보며 추억앓이를 할 것이다. 깜빡이는 커서에 글자 하나하나를 스탬프 찍든 콕콕 찍어 나가며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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