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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09. 2024

왁스플라워


거실 한가운데 기다란 원목테이블 위 작은 화병에 꽂아놓은 왁스플라워는 참 잘도 생을 유지한다. 일주일은 더 되었는데 내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작은 꽃들의 생명력이 아름답다. 함께 데려온 장미도 이름 모를 계절꽃도 시들어 버려졌는데 작은 꽃잎을 가진 왁스플라워는 보란듯이 살아 있다.


기특해 저절로 눈읏음이 나온다. 꽃이란 원래 이런 것이겠지. 그저 존재할 뿐인데 설레고 행복해지게 만드는,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꽃이라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움 그 자체. 


프랑스 시화집, 뮤즈출판사에 실린 그림 


왁스플라워는 일 주 전에 일부러 골라온 꽃이다. 그날 아침 프랑스 시화집에서 세라핀 루이스의 큰 꽃다발이라는 그림을 보다가 꽃을 사고 싶어졌다. 근처에 꽃집이 없는 탓에 20분 정도 운전을 해서 현대백화점을 갔다. 지층에 있는 꽃집을 내려갔는데 봄을 닮은 꽃들이 제 각각의 향기를 뿜으며 양동이에 가득 담겨있었다. 


꽃봉오리가 터지지 않은 붉은 장미, 다발이 큰 노란색 프리지어에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겼지만 나는 왁스플라워 있나요?라고 물었다. 검붉은 장미도 화려한 히아신스도 예쁘지만 가끔은 초록잎 가득한 잔가지가 꽃보다 많아 꽃인지 나무인지 모를 왁스플라워를 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안개꽃보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들꽃 같은 왁스플라워는 어떤 꽃과도 어울림이 좋다.


그날 왁스플라워와 함께 사온 꽃은 이름을 잊었다. 국화를 닮았지만 꽃잎의 양이 훨씬 많은 동글동글한 흰 꽃이었다. 간절기에만 피는 꽃이라고 꽃가게 주인이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열심히 되뇌어 기억하려던 공도 없이 잊어버렸다. 


봄이 오면 더더욱 꽃이 그립고 꽃이 사고 싶어 진다. 다음번에는 나를 보세요 라고 말하던 프리지어를 집안에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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