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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09. 2024

편한 것이 좋아


족히 5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구멍이 날 정도로 낡아서 후줄근해진 정체도 모를 먹빛의 티셔츠 말이다. 누군가 걸레로 집어다 써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다. 홈웨어 서랍장에는 그런 티셔츠가 몇 장 더 들어있다. 사실 서랍 몇 개를 차지했었는데 마지막 이사하던 날에 눈 질끈 감고 이별을 했다.


낡고 오래되어야 편하다.

새것이란 길들여지고 길들이는 시간이 적지 않게 소모된다. 좋은 점은 좋아 죽을 수도 있지만 불편한 점은 어찌해야 할지 자주 고민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맞춤이라 생각하고 곁에 두었지만 막상 두고 보니 기존의 것에 묻어나지 않아 낯설고 불편하다.


기존의 것도 어차피 신선도 100프로의 신상임을 뽐내던 물건들이다. 특별히 애정을 주다 보니 낡아진 것도 있지만 자리를 잡아주니 그대로 주변에 물이 들어 편해진 것도 있다. 그럼에도 새 옷, 새 물건이 생기면 '새'자가 붙은 불편함에 자꾸 눈길이 가고 허리를 빳빳이 세우며 긴장을 하게 된다. 긴장감이 없어질 때쯤 드디어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음이 자연스러워진다.


물건도 사람도 편해야 좋다. 함께 있는 시공간이 불편하면 화장실 급한 아이처럼 발이 동동대고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 도망치고 싶어 진다. 함께 하는 자체가 곤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자주 가까이해야 한다. 이왕 곁에 두었다면 불편함을 씻어 버리고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진 후에도 낡아서 편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은 천천히 가야 한다. 무엇이든 빨리 끓어 넘치지 않는 것은 없다.


나는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있는 낡은 티셔츠를 보면서 오늘도 버려야지라고 생각한다. 수없이 같은 생각을 했다. 결국 매일 찾게 되는 홈웨어는 구멍 난 그 티셔츠가 당연 일등이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도 있는데 집에서는 날개를 달긴 틀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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