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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l 13. 2024

길 잃은 감정

어쩌면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흔들린다고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바람의 끄트머리에서 구르는 낙엽 같은 건지도 모른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빗어 내리면서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초점 없는 눈동자에 무언가를 담고 젖어 있다. 아닌 줄 알았다. 아닐 줄 알았다.


자신 있었다. 언젠부터인가 나의 감정에 자신감이 있었다. 자주 길을 잃다 보면 나중에는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잃어버린 길은 다시 생각하지 않게 된다. 희망이란 단어가 추운 겨울 동상에 걸린 발처럼 시퍼렇게 꽁꽁 얼어붙을 때에도 다른 길을 찾았다.


언 발을 잘라내고 서라도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의 진리다. 다행히 나는 얼어있는 발에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뜨리고 약을 발라가며 양쪽 발을 모두 살려냈다. 가슴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다. 삶이 거기 있어서 살아가는 데 항상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다. 나는 눈을 감고 걷기로 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대, 푸시킨 거짓말을 하는군요.


삶에 속아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앞으로 오는 기쁨의 날은 내가 바랐던 그 기쁨의 날이 아닌걸. 삶은 내 감정을 자꾸 속이라 하고, 감정은 자꾸만 나에게 외면하라 한다. 솔직히 삶은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며 본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매일을 속고 속이는 삶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 말할 때 그 안에도 거짓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거짓은 작정하고 심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긁힌 상처가 만든 자국일 뿐이다. 그런 거짓정도는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거짓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사랑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단순히 사랑하고 사랑한다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었다고는 또 말할 수 없다.


나는 한 번도 감정을 이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흐느적대며 쓸려 다니다가 춤을 추거나 누웠다. 젖어있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려 애쓰며 눈물의 정체를 알고 싶은 듯이 또렷하게 정신을 모아보려 애쓴다. 허무한 줄 알면서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영혼이 보일 뿐이다.


나는 내 흔들리는 감정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미술관 구석의 인기 없는 석상처럼 늘러 붙을 감정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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