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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22. 2023

부캐시대

한 우물을 파야 잘 산다는 말은 말 그대로 고리짝 얘기가 된 지 한참이다. 오히려 여러 개의 우물을 파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즘은 성공하려고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이다. 


프로취미러, N잡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프로취미러란 전문가를 뜻하는 'Pro'에 취미와 접미사 er이 붙은 합성어이다. 알다시피 프로취미러는 운동, 독서, 그림, 악기 등의 다채로운 취미를 가지고 있다. 취미를 다 소화하기에도 바쁜 사람으로 취미가 직업이 되어 돈벌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 N잡러란 두 개 이상의 복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처음에는 부업형태였는데 지금은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강사라는 직업으로 연장된 사람들도 많아졌다. 개인적으론 N잡러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전에도 N잡러는 있었지만 점점 더 활성화되어 개인이 가진 모든 능력이 총동원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한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능력이 몰살당하지 않으니 좋다. 사실 '부캐시대'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의 재능만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재능이 많아 자잘한 상장을 꽤 많이 받았다. 어머니의 기억을 빌어서도 그것은 확실한 기억인 것 같다. 글짓기, 그림 그리기, 노래, 육상 등 분야도 다양했다.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을 든다. 키워주지 못한 재능이 너무 이른 시간에 멀리 가버렸다고.





한 때 드라마나 영화 보기를 즐겨했다. 아니, 그것에 열정을 쏟았다. 하루에 세네 편의 영화를 본 적도 많다. 그렇게 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한꺼번에 보게 되면 음미할 시간도 없이 내용이 뒤섞여 제목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훗날에는 무슨 내용이었더라... 가 감상평이 되기 십상이다. 여하튼, 영상에 흠뻑 빠져서 내가 항상 앉아 보던 소파의 한쪽 자리는 단시일내에 움푹 파인 웅덩이처럼 되어 버리는 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시각에 예민하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스크린에 비치는 그림들을 좋아한 것이었다. 실제로 영화 자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하는 장면이 선명한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멀리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한 때는 전설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피시방에서 산 적도 있다. 나중에는 인생이 너무 탕진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을 정도이다. 세상에 그렇게 재밌는 세상이 없었다. 준고수가 되고 나니 팀전을 할 때면 마치 기사단을 이끄는 장군처럼 의기양양해져 경건한 마음으로 게임에 응했었다. 적진에 몰래 침입에 중앙부를 몰살시킬 때 강한 희열을 느끼고는 했다. 게임은 그때 새로 발견한 재능이다. 객관적으로 잘하는 게임러는 아니지만 지금도 게임을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는 열심히 하는 편이다. 주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겨하는데 함부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습관이 있어서 한 게임당 100시간쯤은 우습게 써버리기 때문이다. 


요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는 중이다. 책도 편식을 하는 편이라 책을 고르는 데도 한참 걸리고 완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내가 글을 다시 쓰면서 책을 좀 더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읽는 것에도 더 재미가 붙었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기도 한다. 드문드문 마음이 당길 때 원하는 책을 조금씩 읽다 보니 한 번에 읽는 권수가 많아진 것이다. 지금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독서가 다시 가장 재밌는 놀이가 되어가고 있다. 영영 떠나버린 재능도 있지만 다시 돌아오는 반가운 어린 시절 재능도 있어 프로취미러는 아니더라도 N잡러가 되지는 않을까 혼자 생각에 웃게 된다.


돌아보니 배우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직업으로 삼을까 생각했던 것들이 적지 않다. 살면서 많은 것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경험을 했고 또 정열을 쏟았던 것 같다. 꾸준히 나를 살피고 뒤져본다. 지금도 가슴 한편에서 내가 깨닫지 못한 숨은 재능이 노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늦었더라도 잘 움터보자.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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