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순환이다

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by 보나쓰
진다는 말에는 시간의 연속성이 숨겨져 있다.
p.26 '혼자였던 저녁과 저녁의 이름', 최세운

얼굴선이 예전과는 다르게, 턱에 살이 올라 둥글어진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눈가 옆으로 지는 주름을 먼저 본다.

요즘은, 아이들의 맑은 표정보다
구부정하게 걷는 노인의 뒷모습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문다.

허리를 거의 반쯤 접은 채, 살아온 세월만큼 느리게 걷던 노인.

한 손엔 지팡이, 다른 손엔 까만 비닐봉지 하나.
얼마 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본 노인의 모습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 사람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나이 듦이란, 어쩌면 기억의 무게를 조금씩 더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사는 일이, 가끔은 무채색의 풍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환하고 눈부셨던 장면도,
어느새 잿빛 배경으로 바뀌어 있을 때가 있다.


젊은 사람도, 아픈 사람도,
결국은 모두 같은 결말을 맞는다.
너무 뻔한 결말 앞에서,
내가 아직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중년과 노년의 길목에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도,
막연한 불안이 엄습해온다.

불안에 휩쓸리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쉽다.
우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고,
과거에서 흘러왔으며,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나온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간다.
그렇게 쌓여 가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열어가고,
조금씩 덜 두려워진다.

아름답게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면 그뿐이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를 것이다.


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또 다른 꽃이 피어날 자리를 남기는 일이다.
내가 남긴 온기와 이야기가,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환하게 밝혀주는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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