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의 괴로움을 살피려고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P.274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소설 속 진 할머니가 자신이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을 읽으며, 나 역시 나이 들수록 내게 더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조급함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너그러워지는 면이 있지만,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더 챙기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자란다. 진 할머니가 자신이 이기적으로 변해간다고 했을 때, 나는 오히려 “할머니, 아직 멀었네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진은 여전히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놓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DNA로 태어났다. 어쩌면 이타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나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 이기적인 것이라면, 나는 이미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지금의 나는 타인을 나보다 더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배려를 한다면, 그건 내가 피곤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도울 수 있는 만큼만 돕는 것이다.
다행히 마음속에 이해하려는 여유가 남아 있어 타인에게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완벽한 이기주의자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타인에게 내 마음과 시간, 노력을 내어주는 일이 이제는 나를 우선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거나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내어주는 것에 익숙했고, 참는 일에 능숙했다. 강요당했다고 느꼈지만, 사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접었고, 다툼이 싫어 상대방의 바람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 보면 “말은 안 해도 내 마음을 알겠지”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표현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알 리 없다. 배려라고 여겼던 그런 행동들은 오해와 불만을 낳아 결국 관계에 금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떤 결심이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천성이란 게 있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일은 없다.
내가 나를 먼저 챙기는 마음이 이기적인 것이라면, 나는 그 마음이 내 안에 깃드는 것을 대환영한다. 이쯤에서 엄마가 나이 들어 고집 세졌다고 동생에게 흉봤던 걸 사과드리고 싶다. 평생 자신의 인생은 없었던 엄마에게, 죽는 날까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라고,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압박했던 거다. 엄마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고집을 피우시던 날, 고개를 푹 숙이고, 목까지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토마토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의 햇볕도 뜨거웠지만, 엄마의 속은 더 뜨거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