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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지만, 다른

사는 게 재미없나요?

by 보나쓰

파도 위의 작은 어선에서 토를 하는 남자가 억눌렀던 삶의 모든 찌꺼기를 쏟아내고 있다. 평생 목을 죄어오던 타이를 풀고 있다. 밤새 끌어안고 울던 아버지의 유골함을 묻은, 흙이 손톱에 끼어 흑갈색인 곱상한 손으로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들을 훔쳐낸다.


암막커튼이 드리워진 오디오룸. 푹 꺼진 삼 인용 소파에 모로 누워 나는 그 남자의 슬픔을 소름 끼쳐하면서도 끌어안고 싶어진다. 저 남자는 이제 육지에 다시 올라 어떻게 삶을 지속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넷플릭스를 켜고 시리즈와 영화를 몇 편째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볼 수 있는 영상이 없을 때까지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 소소한 움직임들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고요한 삶 속에 존재하는 행위들. 청소하고 책을 읽고 가족에게 안부인사를 전한다. 싱싱한 꽃다발을 사서 탁자 위 맑은 유리병에 꽂아 두면 맑은 미소를 띠기도 한다. 아직은 내 감정이 그 평범한 행동들로부터 겉도는 느낌이 있다는 걸 고백한다. 가끔은 간단한 요리도 한다. 그럼에도 나쁜 습관이란 건 나를 주검처럼 만들어버리는 가장 빠른 길 같다. 소파에 누울 때까지 밥도 챙겨 먹고 거실에 음악도 틀고 빨래도 널었는데, 정작 기억은 소실된다. 나는 어느새 외롭고 무력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실감은 가끔 슬픔을 가장해 밀려온다. 나는 그저 주렁주렁 널린 포도송이처럼 감정이 멍울져 내 몸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안간힘을 써 굳이 나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감정을 그다지 잘 이해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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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일수도 그림자일수도 있는 모래알같은 감각 하나하나 소중히 담아내고 싶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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