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것은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P. 25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고독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아도 존재하는 감정이다. 혼잡한 거리 속에서도, 어두운 방 안에서도 고독은 스며든다. 두려움보다 더 진하게, 감정의 정지 상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고독이라는 감정을 386페이지에 걸쳐 집요하게 해부하면서도, 올리비아 랭이 결국 내놓은 대답은,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것은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이 한 문장에 다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섣부르게 예측해 본다.
나는 고독한 적이 있었던가? 당신은 고독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 ‘고독’이라는 감정에 방점을 찍을 때, 그것이 외로움인지, 허망함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결의 감정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다른 감정과 비교해 정말로 내가 느낀 감정이 ‘고독’이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독은 단순히 마음이 허전한 상태가 아니다. 배고픔이 신체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면, 고독은 존재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무언가로 그 허기를 채우려 한다. 고독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의 온기, 대화, 음악, 책, 혹은 예술적 창작 같은 것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려 애쓴다. 때로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것처럼, 고독 역시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아무리 소음을 채워 넣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배고픔이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맛, 그 온기에 닿아야만 풀리듯, 고독도 내 안의 결핍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연결이 무엇인지 마주할 때에만 비로소 조금씩 채워진다. 고독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배고픔이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본능이라면, 고독은 우리를 더 ‘나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감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독을 두려워해야 한다. 고독은 어두울수록,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감각을 깊게 파헤친다. 빠져들수록 불안감도 커진다. 모두가 웃는 자리에서도, 자신만 고립된 영혼으로 갇힐 수 있다. 자신도 무엇이라 부를지 모를 상태에서 완전한 혼자가 되는 것이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는 단순히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넘어, 예술가들이 어떻게 고독을 견디고 그 고독을 예술로 승화시키는지에 대한 깊은 탐구다. 랭은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데이비드 워너로비치, 헨리 다거 등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따라간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늘 어딘가 텅 빈 시선으로, 누구와도 완전히 연결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다. 그림 속의 빛과 그림자, 창밖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독의 결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랭은 호퍼의 그림 속 작은 소품들까지 시선을 두며 호퍼의 외로움을 끄트머리까지 이해하고 찾아낸다. 랭은 이 예술가들의 고독이 단순한 결핍이나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독은 예술가들에게 영양 가득한 토양이 된다. 때때로 고독이란 예술가에게 ‘형벌’처럼 느껴지지만, 그 깊은 고독 속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감정과 통찰이 있다.
올리비아 랭은 고독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신만 굶고 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외로움과 타인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고, 정신적으로 모두에게 무례했다. 그 속에서 모두가 답을 찾고 어우러지는데, 나만 홀로 걷는 듯했다. 이유가 어떻든 나는 고독을 사랑해야 했다. 사람들이 차린 잔칫상에서 내가 먹을 것은 어차피 한 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고독해졌을 때, 마침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던 건 내가 나를 글로 표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의사는 그것을 승화라고 불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어둑해졌을지도 모른다. 고독감을 감당하지 못해,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느껴져 찾아갔던 정신의학과 의사가 말했다. 우울감은 실제로 치매나 고혈압 같은 신체적 질병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정말 조심스러운 감정이지만, 고독을 멀리해서도 안 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배고픔을 조절하고, 그 빈 공간에 ‘광범위한’ 혹은 ‘보편적인’ 것 외에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이상을 채워야 한다고. 고독한 감정을 무작정 피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잘 조절해서 내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내 안의 결핍과 욕망,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까지 발견하는 길로 가는 여정이 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