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재미없나요?
아침부터 기웃대던 햇살이 오후 내내 화사하다. 다채로운 음이 섞인 새소리가 잎사귀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오늘 검은 고양이는 나를 가까이서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간다. 세탁소에서 막 배달된 셔츠의 깃은 기분 좋게 빳빳하다. 아침 산책을 마친 나는 서둘러 아이패드와 아이팟, 지갑을 챙겨 도시 외곽의 산 아래 카페로 향했다. 이십여 분이 걸리는 도로를 달리면 한적한 산 아래 그곳이 나온다. 따뜻하게 데운 양송이 수프와 바삭한 빵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리고는 내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소리 내어 웃은 기억은 없지만, 마음속엔 그늘도 없다. ‘밝다’는 표현이 꼭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만도 없고 벅찬 희망도 없다. 모든 것이 적당하다. 오늘이 좋다.
요즘은 일상이 평안하다. 남이 불러주는 ‘작가’라는 호칭도 이제는 편안히 듣는다. 처음에는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내게는 가슴 벅찬 책 두 권이었지만 남들에게는 고작해야 책 두 권일 수 있었다. 직업이 작가라기에는 애매한 수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 몇 개월 전부터는 직업의식을 갖는 게 좋겠다 싶어 누가 직업을 물으면 글을 쓴다고 답한다. 그러고 나니 글에 대한 부담이 조금 생겼다. 그마저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세월을 돌아 돌아 내가 정착한 껍데기다. 운명이란 참 엉뚱한 곳에서 인연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출간할 글을 쓰며 내내 생각한다. 나는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남들이 다 사는 인생, 누구나 겪는 역경이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남은 잔유물을 정제해 책으로 엮을 뿐이다. 앞으로도 내 책이 내 인생이 아닌 곳에서 나오긴 어렵다. 그렇다면 책 속 어딘가에 끈덕지게 남을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고 싶어진다. 나로부터 전해지는 글이 누군가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기를. 인생을 함께하는 나침반은 아니어도 마중물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효도도 같이 한다. 내가 작가가 되는 길이 엄마에게 그렇게 큰 행복을 주는 일인지 몰랐다. 다른 사람은 다 읽어도 가족만은 읽지 않기를 바랐던 책들이었다. 혹시라도 딸이, 누나가 외롭고 불행해 보일까 봐. 그동안 숨겨왔던 마음이 한꺼번에 뒤집어질까 봐. 가족에게만 보이는 또 다른 내 생이 있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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