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P.26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살면서 곧잘 잊곤 하는 '본질'이란 건 언제나 중요하다. 기둥 없이 쌓아 올릴 수 있는 지붕은 없다. 두 번째 에세이 [신문지에 싸인 꽃다발]을 냈던 시기에 브런치스토리의 한 작가가 에세이를 출간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삶의 이야기로 첫 책을 출간하기 때문에 장기전을 결심한 나에게 그런 책들은 사실 관심사에 없었다. 내가 두 권의 책을 내고 또, 글을 지속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첫 번째 목표는 판매 부수가 아니다. 목 표라기에는 거창하고 나는 내 글을 발굴하는데 관심이 있다. 그런 마음이 브런치스토리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 낸 첫 책이 2쇄를 찍을 것 같다는 소식을 무시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책을 내면서 출판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2쇄를 찍는다'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의미 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일차적인 성과는 책에 대한 자부심을 안겨주고 집필하는 시간과 삶에 대해 어떤 보상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건 맞다. 그런 객관적인 사실과는 관계없이 나는 내 책에 대해 나만이 알고 있는 갈등과 고민에 더 열중해야 했다. 첫 책의 글로부터 독립했는지, 더 나은 글에 접근을 했는지, 책을 쓰는 방식은 부끄럽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걸어야지 빗줄기를 일일이 셀 수는 없는 일이다.
전에 출판사를 한다는 어떤 이가 쓴 단문을 읽었다. 내용은 대략, 한강 작가가 아닌 한, 자신의 문체나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고민하지 말고 책을 내고 싶다면 스토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 투고를 할 때도, 리포트를 쓰듯이 스토리와 목차를 잘 정리해서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감각의 정점에서야 비로소 좋은 문장이 나오는 '시' 따위는 취급도 하지 않겠구나. 그 출판사를 구깃구깃해서 버려버리고 싶지만, 상업적인 목적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첫 에세이를 냈던 출판사에서 재작년쯤에 출간되어 국내에서 흥행하고, 작년에 대만 등으로 수출된 어느 소설이 있었다. 솔깃한 마음에, 서점에 가서 읽어 보았다. 그 소설 역시, 생소한 스토리가 눈길을 끌었지만 그 밖의 역량은 내게 읽히지 않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선입견을 줄 수 있으니, 소설의 제목은 밝히지 않는다.)
요즘은 에세이도 사람들을 자극하는 소재나 이야깃거리를 가지면 책을 낼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첫 책은 더 그렇다. 좋은 글솜씨나 글에 대한 철학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악기가 있고 노래에도 여러 장르가 있듯이, 작품도 그럴 수 있다. 글거리만 있으면 여기저기서 풍덩풍덩 뛰어드는 세상에서 작품을 내는 마음도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독자의 눈은 멀지 않았고 단지,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글은 달라야 한다. 부족하더라도 그 다름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글을 지속하기 위해서, 하루키나 한강 정도는 되어야 자신이 내는 작품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가를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