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조끼

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by 보나쓰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였다.

P.131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집에 가만히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호르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에어컨의 온도는 더 이상 낮추지 않는다. 오늘도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들기가 싫다. 차를 몰고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파트옆 사 차선에는 차들이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 없이 맑기만 한 하늘이 뿜어내는 열기가 오늘도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요사이 머리를 뒤로 끌어당기는 듯한 후두통 때문인지 잎사귀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군살 없는 도시의 가로수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신호에 막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무 옆으로 꾸물거리는 형체가 보였다. 머리에 수건을 덮어쓰고 그 위에 안전모를 쓴 남자였다. 남자는 한 손에 삽 같은 기구를 들고 발을 끌듯이 걸으며 나무 그늘에서 뙤약볕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갔다. 나무 그늘은 남자의 발꿈치를 잡아당겼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재작년인가에 다리 하나가 무너져서 도시가 난리가 났었다. 한 명이 다쳤고 다른 피해는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시장은 가슴을 쓸어내렸으려나. 그 이후에 도시의 모든 다리가 재정비되기 시작했다. 남자가 돌아간 그곳은 그중의 한 다리 아래다. 대학병원으로 이어지는 그 다리 주변으로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는 작업들이 몇 달에 걸쳐 행해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여름이면 늘 그렇듯이, 전례 없다는 더위로 독이 바짝 오른 잡초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있다.


혹독한 여름에 쏘이며 몇몇의 남자들은 쉬는 날이 거의 없이 공사를 지속했다. 방금 다리 아래로 힘없이 내려간 남자는 들고 있는 기구를 이용해 무언가를 두드리고 쿡쿡 찌르며 가끔은 고개를 숙여 작은 것들을 집어던졌다. 한동안 남자는 그 행동을 반복할 듯 보였다. 태양은 동정 심 없이 제 빛을 뿜어대고 남자의 주황색 조끼만이 그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차가 안 빠질까 생각하는데 앞차들이 차선을 따라 서행하기 시작했다. 막고 있던 공사차량이 길을 내어주느라 지체된 거였다. 식사를 마치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사서 돌아오다가 같은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췄다. 이 번에는 두 명의 남자가 나무 그늘아래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길 쪽을 등에 지고 서 있는데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같은 사람인가... 생각하는데, 그가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여름 공기는 알량한 그늘 주변에서 더 뜨겁게 그를 삼킬 듯 일렁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더 호기롭게 웃으면서 주황색 조끼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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