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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길 위에서

사는 게 재미없나요?

by 보나쓰

다시 그 길을 걷는다. 2년 전에도 지나간 길이다. 그때의 나는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조여 왔다. 보도블록은 끝없는 낭떠러지처럼 느껴졌다. 나무 그늘은 벽처럼 앞을 가로막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와닿지 않는 잡음 같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길 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 다시 같은 골목을 걷는다. 벽돌집 담장 위에 넝쿨이 길게 뻗어 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들꽃이 돌틈 사이에서 자란다. 길가 카페 창에는 지난 계절의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다. 풍경은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내 눈에 비치는 길은 달라져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같은 자극도 감정 상태에 따라 뇌의 회로가 다르게 반응한다”라고 말한다. 전에는 풀 하나, 꽃 한 송이 보지 못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위험이 도사릴 것만 같은 위압감을 느꼈다. 오늘은 이정표가 안내하는 지도처럼 길이 친절하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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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일수도 그림자일수도 있는 모래알같은 감각 하나하나 소중히 담아내고 싶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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