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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우롱차, 밀향 취한 19동차

일상찻집, 아이와 티타임

햇살이 참 좋은 날이었다.


54일간의 지겹도록 긴 장마비가 지나가고 더위가 한 풀 꺾인다는 처서가 다가오는데 연일 폭염주의보가 뜰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덥지만 나도 아이들도 차 한 잔의 여유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 엄마가 틈만 보이면 차를 마시자고 앵앵거려 더위도 식힐 겸, 대만의 우롱차를 한 잔 우리기로 했다. 


꼭 가보고 싶은 티하우스가 하나 있는데, 이음 티하우스라는 대만 우롱차 전문점이다. 차 공부를 전반적으로 했지만, 대만차 같은 경우는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많은 관심이 간다. 그곳에서 차를 몇 개 구입했는데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어 재구입 의사도 있다. 시음티로 넣어주신 19년도 동차, 밀향 취한은 이날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집안 한가득 피어오르고, 달착지근한 뒷맛이 나른한 오후에 꿈결 같은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코로나가 기승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한 잔의 차로 큰 위로를 받았다.






13년간 나와 함께 차를 마셔온 큰딸은, 차를 우릴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면 얼굴에 함박 웃음이 가득이다. 십년간 차를 마셔온 아들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엄마가 사진 찍을 준비를 하면 슬쩍 찻잔에 손을 대며 사진 찍히는 순간을 기다린다.


빵보다는 떡, 떡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순수 한국인 입맛인 아이들은, 다식으로 떡을 종종 찾는다. 사실 주 티푸드는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같은 구황 작물이 차지할 때가 많지만, 한 번씩 떡을 내어주면 또 오물오물 신나게 잘도 먹는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좋은 음식이 주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생각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고 건강한 식단에 많은 신경을 쓴 편이고, 고맙게도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나와 아빠 역시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성장이 시작되었던 터라 크게 걱정하진 않지만, 자연식을 하는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 유제품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보다 조금 더 작긴 한 것 같다고 혼자 한 번씩 생각하는 일은 있다. 그래도 외면적인 크기보다는, 내면의 탄탄함이 더 중요함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확실히 느끼는지라, 올바른 식습관을 심어주는 일은 계속 고집대로 유지해갈 듯하다. 코로나로 학교 식단마저 없이 집에서만 오롯이 식사를 하는 아이들은, 어쩌면 더 엄마의구미에 맞는 식습관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같은 의미로, 엄마와 함께 하는 찻자리를 하루에 두세 번씩 즐기고, 날이 더울 때는 청량 음료나 청음료보다는 차를 우려 마신 찻잎을 냉침해 둔 아이스티를 찾는 아이들의 차생활도, 건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습관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차를 마시면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참 좋다.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처럼 짙은 공감과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일은 없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시간이 아니던가. 늘 시간에 쫓기고, 시간이 없어 급한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오늘도 난, 아이들과 차를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

혼자 즐기는 찻자리도 참 좋았지만, 함께 하는 찻자리보다 풍요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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