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정의, 차에 대한 단상
차란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 차란
한 잔의 위안, 위로, 힐링과도 같은 시간이다.
나홀로 마시는 차는 마치 요가나 혹은 명상을 하는 시간처럼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잔잔한 시간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함께 마시는 차는 사랑이다.
시간을 들여 나누는 사랑.
하지만 차에 대한 정의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학명을 가진 차나무의 잎을 가공해서 음료로 만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백차, 황차, 녹차, 우롱차(청차), 홍차, 흑차가 있다.
같은 차나무라고 해도 품종이 서로 다르고
제다법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차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시선에서 바라본 차의 구분이다)
따라서 사실은 루이보스차, 허브차와 같은 차는
이러한 '차'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 것이다.
백차는 위조와 건조라는 가장 간단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차로
제다 과정이 간단한 만큼, 모든 차가 그러하지만, 특히 만들기 어려운 차에 속한다.
황차는 제다 과정에서 특히 민황이라는 과정을 거친 약발효차로 구분이 되고
녹차는 살청이라는 과정을 거쳐 산화효소를 없애고 발효가 일어나지 않은 불발효차라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찻잎 색이 녹색 그대로 남아 있다.
사실 여기서 '발효'란 미생물에 의한 발효라기보다는 산화효소에 의한 '산화'로 이해함이 옳다.
미생물에 의한 진정한 후발효차가 이루어지는 것은 보이 숙차와 같은 흑차이다.
반면 홍차는 일부러 일정 온도와 습도를 주어 산화를 시키는 차로
그런 이유로 찻잎이 검고 완전발효차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롱차는 주청이라는 과정을 거친 반발효차로,
발효도, 즉 산화도로는 대략 녹차와 홍차의 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후발효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보이 숙차, 육보차 등의 흑차이다.
보이 생차는 후발효가 된 보이 숙차를 만들기 위한 모차를 뜻한다.
보이 생차를 그대로 익혀서 30년이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익은 보이 숙차가 되지만
일부러 악퇴라는 과정을 통해 빠르게 후발효를 시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보이 생차는 충분히 익은 후에 음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런 차를 베이스로 하여 향을 입히거나 가공을 새로 한 차들을 가공차라는 범주에 넣는다.
서양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차와
동양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차는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여러가지 부분에서 서로 다른 점들이 있다.
그래서 차를 즐김이 더 즐겁다.
다양함이 존재하는 영역이기에.
6가지 차종이라는 것도, 말이 6가지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수천 가지, 아니 수만 가지에 이르는 차종이 있다.
방대하기에 즐겁고, 다양하기에 쉽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차를 꼭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시다 보면 알고 싶고, 그래서 배우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것이 차생활인 것 같다.
차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 한들
차생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를 꾸준히 경험하고 마시는 것이 진짜 차를 즐기는 방법이며 차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두 아이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차를 마셔온 게 벌써 14년이 되었다.
365일 하루에 한 번만 마셨다고 쳐도 5천 잔을 넘게 차를 마셔온 셈이다.
차와 만나는 시간은 나에게는 위안이요, 명상이요, 또 관계이다.
차가 쌓여온 시간만큼 아이들과 나의 관계가 쌓여왔고
매일의 눈맞춤과 매일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에게 차는, 매일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