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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찻집 티레터 10호] 빈티지 찻잔 수집

영상번역에 한창 몸을 담고 있던 그 시절에, 열심히 일하고 아이도 내 손으로 키워낸 제 자신을 위해 매달 찻잔을 하나씩 구입했습니다. 워킹맘이지만 출근을 하지 않기에, 늘 머리를 질끈 묶고 목 늘어난 셔츠 차림으로 옷도, 신발도, 화장품도, 가방도 사지 않고 일만 하는 내 자신을 위한 선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취미생활이었던 차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찻잔이라는 매력적인 아이템은 한 달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큰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환경에 대한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는 당시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세제나 환경호르몬, 재사용, 재활용과 관련하여 환경보호에 혼자서 제법 열심이었던 터라 찻잔은 새것이 아닌, 빈티지로만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빈티지, 앤틱 그릇이란 50년, 100년 전에 만들어져 누군가가 사용하거나 보관했던 그릇을 뜻합니다. 어떻게 보면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사치품을 구입하는 것인데, 새걸로 사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빈티지를 구입하는 것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좋을 거란 생각에 제 나름의 기준을 세워 구입하기 시작했지요. 더불어 찻잔에 담겨 있을 숨겨진 옛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있어 더욱 낭만적이었거든요.

그렇게 빈티지 찻잔들을 한 조, 한 조 모으다 보니, 빈티지 컬렉터라는 명성(?)을 얻게 되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왠만한 잡지사에서 모두 촬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꾸준한 블로그 기록 덕분이었지요.




동서양의 그릇을 막론하고 빈티지 찻잔, 골동이 좋은 것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청화백자에 열광했던 서양인들이 그려낸 동양풍의 청화가 그려진 찻잔들, 일본의 이마리 도자기를 서양식으로 해석해낸 잔, 조지 3세의 간택을 받아 유명해진 브랜드의 라인, 샬롯왕비에 얽힌 이야기,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중국의 옹정제가 아꼈던 문양, 중국 도자사의 흐름에 맞는 찻잔들, 애정하는 영국 도자기 디자이너의 작품들...

빈티지 찻잔 하나로만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매력에 빠져들며 빈티지 잔에 폭 빠져들다 보니 이번 생애에 미니멀라이프는 글른 듯합니다. 티마스터, 중국차 평차사라는 직업을 버리지 않는 이상 아마도 빈티지 그릇은 언제나 저희 집을 그득히 채우고 있겠지요.



간혹 마음이 동하는 날은 한바탕 그릇과 찻잔 정리를 하면서 오랜 수강생분들에게 잔과 그릇을 나눔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 이야기에, 저의 세월이 더해진 빈티지 찻잔들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머금고 있기에 더 특별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찻잔과 그릇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Tea Letter를 통해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 한 잔 하기 좋은 오후입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새로 들어온 백차를 한 잔 하고 있습니다. 그 향기와 운치를 글로 전해드리며, 평안한 오후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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