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사와 메이드와 집

인도 생활의 삼복

인도, 첸나이에서 별탈 없이 생활하려면 삼복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바로 기사와 메이드, 그리고 집이다. 요즘은 첸나이도 사정이 많이 좋아져 예전 같은 힘든 상황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갓 온 '마담'들에게는 아무리 좋아진 상황이라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일단 물과 전기 사정이 한국처럼 좋지 않으니, 집에서의 생활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모기가 수백 마리 모기장에 붙어 있을 만큼 많거나, 비가 오면 물이 샌다거나, 흰개미가 나온다거나, 벌레가 많다거나... 크고 작은 문제들의 온상이 바로 집이다. 심지어 내가 첸나이에 거주하는 동안 천장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집도 있었다. 100% 만족할 수 있는 집은 없다. 집이 상태가 좋으면 학교나 시내로 나가는 이동 거리가 너무 길다든지(첸나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차를 오래 타는 것도 나름의 고역이다), 집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면 툭하면 에어컨이 고장 난다거나(에어컨 기사를 불러 수리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재빠르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하는 등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참 다행히도 나는 한 집에서 4년을 살았다. 첸나이에 나보다 먼저 살던 후배가 있어서, 신랑과 함께 워낙 꼼꼼하게 집을 봐주어 큰 문제 없이 집에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다. 게다가 큰 아이와 작은 아이 학교도 10분 거리여서 밖에서 방황하는 일 없이 집을 백분 활용하며 잘 지냈다. 집을 구할 때 기본적으로 유의해야 할 점은 물이 어느 정도 깨끗한지, 전기가 나갔을 때 자체 백업이 되는지, 학교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기나 벌레가 없는지 등이다. 특히 1층은 벌레가 잘 들어오는 편이라 피하는 게 좋지만 관리가 잘 되는 컴파운드 같은 경우는 큰 무리가 없는 편이다.


그리고 기사와 메이드. 남들은 기사와 메이드가 있다고 하면 부럽다, 여왕처럼 사는구나, 하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람을 쓴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을 다루려면 정말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련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막 인도에 정착하게 된 한국 사람이 몇이나 이들을 잘 다룰 수 있겠는가. 나 적응하기도 바쁜데 기사와 메이드를 다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메이드와 기사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 은근히 겁이 났었다. 나의 첫 메이드 같은 경우도 한 달 정도 정말 열심히 일하더니, 자기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자기 아이들을 지원해 달라면서 우리나라 돈으로 십만 원을 매달 기부해달라는 거다. 이런 일은 정말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일이고, 기사가 앙심을 품고 차에 펑크 내고 도망을 가거나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고 키를 뽑아서 가버리는 경우, 메이드와 기사가 손을 잡고 귀중품을 털어가는 경우 등등 외국인들이 당하는 고초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는 첫 기사와 끝까지 함께 했고, 메이드도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마지막 1년은 인도 생활에 달인이 되어버린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메이드 없이 혼자서 집안일을 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참 편했던 것 같다. 3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난 집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게 잘 적응 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집의 위치가 좋아 어디를 가든 이동거리가 짧은 편이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꽤 많았고 특히 마지막 한해는 그러했다. 


하지만 보통은, 외출해 있는 동안 우렁각시처럼 집을 치워두고 사라지는 메이드를 백분 잘 활용했다. 나도 첫 3년은 메이드였던 칼라이의 덕을 참 많이 봤다. 수돗물 상태가 좋지 않아 보통 과일을 손질하거나 설거지를 한 후에 정수물이나 생수로 헹구는 작업을 하는데, 이게 손이 보통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보니 모든 집안일이 한국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집도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넓고, 아무리 작은 집도 보통 화장실이 3개씩은 있어서(도대체 왜!!) 화장실 청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좋은 메이드를 만나, 몇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는 울고불고 서운해하며 마담을 떠나 보내는 메이드도 많다.


나 같은 경우는 기사였던 하자가 그러했는데, 4년간 함께 하며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우리 가족을 위해 참으로 충실하고 성실하게 일해 주었고 나 역시도 따뜻한 마음과 정으로 대해주어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굉장히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정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 메이드나 기사를 보면, 툭하면 누가 죽었다, 결혼기념일이다, 아이가 아프다 등 갑자기 결근하는 일도 잦고, 그럴 경우 미리 연락을 주면 다행이지만 갑자기 출근 10분 전에 연락을 준다든지 하는 일도 많아 애가 탈 노릇이다. 한국이라면 택시를 타거나 내가 운전하면 그만이지만, 이곳 인도에서는 릭샤(툭툭이)나 콜택시를 부르는 것도 아주 용이하지만은 않다 보니 아이들 등교 시간이 되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많다. 물론 나야 재미 삼아 릭샤를 종종 타곤 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촉박한 등교 시간에는 가히 권할 만한 일은 아니다.


기사와 메이드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전 마담과는 무척 안 좋게 끝난 기사나 메이드가, 다른 집에 가서는 몇 년이고 충성하며 일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처음에 첸나이 왔을 때, 워낙 여행도 많이 다니고 첸나이 탐방도 많이 다니다 보니, 기사와 격식 없이 친하게 잘 지냈는데, 첸나이에 오래 사시던 분들이 다들, 그렇게 지내면 곧 기사와 안 좋게 끝날 거라며 끊임없이 충고하곤 했었다. 고마운 충고이긴 했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하자와 관계를 만들어갔고, 그 관계는 그분들의 예상과 전혀 달리 지금까지도 좋게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도 기사, 메이드와 4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마치 한 가족처럼 지냈던 것도 사실이다. 인도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특히 우리집 기사 하자는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서, 엄마 껌딱지였던 둘째마저 엄마 이상으로 안기고 매달리고 했던 하자. 아이들이 많이 의지하고, 정서적으로도 참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사람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인도라는 타지에서, 외국인이라는 입지는 이용당하기 참 쉬운 입장이긴 하기 때문에, 기사나 메이드와의 관계에 있어 조금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결국 인간관계란 똑같은 것 같다. 잘해주고 기대하면 실망하기 마련이고, 마음을 주지 않으면 허하기 마련이고. 결국은 본인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나캄 첸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