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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프라블럼에 적응하기

No problem!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영어 한 마디는 바로 이것이다.

"노 프라블럼(No problem)"

배낭 여행객들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노 프라블럼'을 4년간 살면서 듣다 보니, 이제는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노 프라블럼"이 나온다. 인도인들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이다.


인도에 4년간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한국과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점이다. 한국의 시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답답하리만큼 모든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속이 터질 노릇이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걸 그리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특히나 인도에서는 말이다.


인도의 '노 프라블럼'은 바로 그 사회의 여유를 담고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빨라야 하고, 빠름이 경쟁력이 되기도 하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빨리 변해버리는 나라이다. 그래서 누구나 말하듯 여유가 없다. 한국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바로 1분의 소중함이다. 긴 인생을 살면서도 그 1분을 온몸으로 음미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짧기만 한 1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단적인 예로, 명상과 요가에 빠져 지내던 나는 아이들과 매일 1분 명상을 하곤 했다. 1분이었던 명상의 시간이 나중에는 3분이 되고, 3분이 5분이 되고, 5분이 10분이 되면서, 나도 아이들도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삶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스윙 키즈>를 보면서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저 당시에는, 미군들에게 끊임없이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는 사실. 가난했던 시절,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발전하기 전의 훨씬 미개했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도 '노 프라블럼'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과 함께 '노 프라블럼'의 여유를 잃게 된 우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4년간 인도 생활을 마치고,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도착해 있는 택배를 보고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편리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새벽에 배송을 하는 택배 기사분들 생각이 덜컥 났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그 누구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인도의 '노 프라블럼'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면 내일 고쳐도 되고, 모레 고쳐도 된다. 더우면 방마다 천장에 달려 있는 팬을 틀면 될 것이다. 오기로 한 에어컨 기사가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낼 이유가 없다. 인도에 있는 동안은 인도의 시계를 존중하라. 그 시계에 익숙해진 또 다른 나의 모습에 놀라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에어컨 기사가 왔다고 전화가 와도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그들은 나를 기다려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도 어김없다. '노 프라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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