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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 - 닐기리스, 살렘

첸나이가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인도차 3대 생산지 중의 하나인 닐기리스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어로 하자면 블루 마운틴이라는 뜻을 가진 닐기리스 지역은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한 구역으로 높은 고도와 드넓은 차밭, 천혜의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첸나이에서 4년을 살며 닐기리스를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른다. 나처럼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닐기리스는 지상 낙원 그 자체였다.


처음 닐기리스를 여행했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닐기리스 구역의 우다가만달람이었다. 우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멋진 호수와 초록빛의 드넓은 차밭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대관령을 방불케 할 만큼 고불고불한 산길을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했던 아찔함을 제외하고 모든 게 완벽했다. 친구들 중 한 명의 어린 딸은 그 길에서 결국 멀미가 심해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산중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을 뛰어 놀기 바빴고 우리는 탁 트인 경관과 시원한 공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날 저녁에는 숙소 주인이 열어준 캠프파이어와 바비큐로 더욱 특별한 추억이 만들어졌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다즐링이나 닐기리스와 같은 차 산지마다 영국인들이 쉬어가기 위한 멋진 저택들을 잘 만들어두었고, 덕분에 지금은 휴양지에 갈 때마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호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아프고 쓰린 그들의 역사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향한 곳 역시, 식민지 시대의 잔재이자, 토이트레인을 탈 수 있는 우띠역이었다. 우띠에서 쿠누루까지 한 시간 거리를 달리며,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예전에는 닐기리스에서 채엽한 찻잎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토이트레인. 지금은 다행히도 자유로운 바람을 가득 싣고 달릴 수 있는 기차이다. 기차 안에서 만난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아이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다 결국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다. 사진찍기를 정말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대화 역시 재미있다. 어설프게나마 타밀어를 배워둔 덕분에 매번 남인도 여행을 떠날 때마다 뜻밖의 즐거움과 추억이 쌓인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초록빛이 가득하다. 첸나이의 덥고 습한 기온과 달리 10도까지 떨어지는 시원하고 다소 차가운 공기도 머리를 맑게 해준다. 빵빵거리는 오토바이의 소음에서 벗어나 온몸으로 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한 이곳, 닐기리스.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워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후, 자그마치 세 번을 더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첸나이로 돌아오는 길에는 살렘(Salem)이라는 곳에 잠시 들렀다. 남인도 여행을 계획할 때는 돌아오는 길에 볼만한 곳이나 관심이 가는 지역을 꼭 표시해 두는데, 1008개의 시바 링감이 있는 살렘의 시바 링감 템플이 이번 목적지 중의 하나였다. 시바신과 남성을 상징하는 시바 링감과, 여성을 상징하는 요니(Yoni)가 함께 놓여 남녀합일, 천일합일을 뜻하는 형상으로, 1008개의 링감이 산길을 따라 주욱 늘어서있다는 그곳.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번 링감을 시작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1008번째 링감에 도착하면 그곳에서는 메인 템플이 자리를 잡고 있고,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황소, 난디 역시 1008개가 놓여 있었다. 신을 벗고 템플 안에 들어가,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시바신의 늠름한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템플 구석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푸람과 작은 신상들, 나무 한 그루 하나 그냥 놓여져 있는 게 없다. 저 다양한 색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들의 생활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템플들, 비슷한 듯하지만 각각의 특색과 색깔을 확실히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템플의 모습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내려오는 길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이번에는 1008링감에서 1링감까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하여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첸나이로 돌아가면, 언제나처럼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닐기리스에서 누린 작은 힐링과 시바링감 템플에서 깨달은 작은 진리는 나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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