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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 - 칸치푸람

아침이면 자그마치 27도까지 떨어지는, 남인도 첸나이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40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계속되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27도의 날씨가 되면 마음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 이날은 첸나이 근교에 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칸치푸람으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칸치푸람은 '사원의 도시'(The city of temples)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템플 도시이기도 하며, 바라나시 다음으로 신성한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실크로도 유명해서 첸나이에도 칸치푸람 실크를 사용한다는 사리숍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 불교를 전도했다는 보리달마가 탄생한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힌두교 3대 신 중의 하나인 시바신과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와 연관된 신성한 망고나무로 유명한 템플이었다. 첸나이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 스리 에캄바레스와라 템플, 그 신성하다는 망고 나무가 있는 곳.


이날따라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가득하다. 남인도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 늘 변함없이 파랗고 예쁜 하늘이다. 뭉게구름 사이로 높은 고뿌람이 보인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눈이 부셔서 눈을 잔뜩 찌푸린 아이들은 템플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고는 발바닥이 뜨겁다며 깡총깡총 뛰어다니다 눈이 부신 것도 잊고 까르르 웃어댄다. 엄마의 멋진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딸내미는 손에 카메라까지 준비해 들고 말이다.


유명한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템플, 바닥에 보이는 색색깔의 랑골리를 보고 '슈퍼그랑죠' 문양이라고 신이 난 아이들. 템플 위쪽에는 시바신의 가족들인 시바신, 파르바티, 가네샤, 무루간 상이 나란히 함께 놓여 있다. 


망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는, 망고나무와 시바신, 파르바티에 얽힌 이야기가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시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보호하고, 파괴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데, 이를 모르고 시바 신의 배우자였던 파르바티가 장난으로 시바 신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만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을 방해 받은 데에 화가 난 시바신이 파르바티에게 호통을 치며, 땅으로 내려가 속죄를 하라고 명령했는데, 그곳이 바로 칸치푸람 강가였던 것이다. 이에 파르바티는 망고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강가의 모래로 시바신을 상징하는 시바 링감을 만들며 속죄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 템플 안에는 108개의 시바 링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바 신은 속죄 중인 파르바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방해하며 속죄하는 그녀를 시험하는데, 마지막으로 갠지스 강물을 끌어 들이붓기에 이른다. 파르바티는 링감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링감을 끌어안았고 이 모습에 감동한 시바신은 화를 풀고 파르바티를 다시 받아들였다고 한다.


시바신과 파르바티의 재결합과 망고나무, 칸치푸람의 이 사원에는 그 신성한 전설과 함께 3500년이 된 망고나무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망고나무를 돌며 그 신성한 기운을 받기 위해 나뭇잎과 나무에 한 번씩 손을 대고 기도를 올리는 인도인들의 틈에 섞여, 나도 아이들도 그 기운을 받아보고자 망고나무를 슬쩍 만져본다.


사원의 도시인 만큼 칸치푸람에는 남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템플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는 카일라사나타르 템플과 같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정겹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템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며 사진찍기와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다. 투박하지만 정교하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 사원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작은 터와 기념관이 남아 있는 보리달마의 기념관도 칸치푸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힌두교의 성지에 남아 있는 불교 기념관이라니. 꽃이나 마음을 헌정하는 것은 좋지만 기금을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졌던 아담한 공간이었다.


첸나이보다 2루피 저렴한 칸치푸람 짜이를 한 잔 마시고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했다. 눈부시게 파란 인도의 하늘에 연거푸 감탄하며. 겨울에는 팔지 않는 망고가 문득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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