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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과 사랑에 빠지다

꽃의 천국, 인도

인도에 있는 동안 매일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는 재스민 꽃이었다. 처음 차로 접했던 재스민은 나에게 그렇게 인상 깊은 꽃은 아니었는데, 인도에서의 첫째 날, 기사 하자가 차안에 걸어놓았던 재스민 꽃 향기는 나에게 신세계와도 같았다. 차 안에 갇힌 풍성한 꽃향기, 그 향에 심취한 나를 보고, 하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재스민 꽃을 차 안에 걸어두었고, 특히 인도 여행을 앞두고 있는 날은 더 풍성한 재스민 꽃을 걸어놓곤 했다. 그래서 재스민이라고 하면 나는, 여인들의 머리에 걸려 있는 재스민 꽃보다, 차안에서 피어오르던 그 향으로 인도를 추억한다.


첸나이 골목 곳곳에서 재스민 꽃을 파는 여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집 앞에도 어린 아들을 키우며 꽃을 엮어 파는 젊은 엄마와 시어머니가 함께 하는 가게가 있었다. 이곳에서 종종 재스민을 구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과 친해졌는데, 어설픈 타밀어를 한 마디씩 던지는 나를 보며 눈이 동그래지곤 했던 그집 아들의 눈망울을 기억한다. 요구르트와 초콜릿을 하나씩 쥐어주면 수줍어하면서 '난드리(고맙습니다의 타밀어)'라고 외치며 엄마의 치마폭으로 달려가던 모습. 인도를 떠나던 날, 내가 가지고 있던 사리 몇 개를 선물로 주었더니 좋아하던 여인의 웃음도, 인도에서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갑자기 재스민 향이 그리울 때면 나는 그곳에서 재스민과 장미꽃 송이를 사곤 했는데, 재스민 꽃은 물론이거나와 인도 장미 향기의 아름다움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두 가지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그 향기는, 천상의 향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내가 아끼는 웨지우드 빈티지 찻잔 중에, '인디아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찻잔이 있는데, 그곳에 그려진 것처럼 꽃송이는 작지만, 그 꽃이 지닌 그 향기는 잔잔하면서도 그윽했다. 인도 장미 꽃향기가 그득한 테이블에 앉아, 인디아 로즈 찻잔에 인도 다즐링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최고의 행복이었다.


재스민 꽃을 엮어서 길게 만든 재스민은, 손에서 팔꿈치 길이를 한 단위로 판매하는데, 저렴할 때는 10루피, 20루피에, 축제 때라든지 재스민이 귀한 시즌에는 60~80루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에 판매가 되곤 했다. 재스민 향기도 호불호가 가려져,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뭐든 마음가짐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다. 인도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스민의 향기는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고, 인도를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 향기가 독하기 그지 없었던 것처럼. 


한국에 돌아온 후 가장 그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스민의 향기이다. 인도 길거리, 나의 차안, 심지어 나의 집안에서도 원하면 언제든 즐길 수 있었던 재스민의 향기. 그 향이 그리워 추억에 잠길 때면, 재스민 향이 담긴 인센스를 피운다. 인도에서 직접 사온 재스민 향은, 그리움을 달래주고, 추억을 되살려준다. 싱싱하게 피어오른 재스민의 향기를 다시 한 번 맡을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향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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