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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생일

매년 8월 말즈음이 되면, 첸나이 거리가 복작복작해진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신이기도 하고, 인도 유치원에서 여자아이들 틈에 둘러싸인 우리 아들을 보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붙여주었던 별명, '크리슈나의 탄신일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들이 다니던 인도 국제 유치원 인더스 스쿨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지만 인도의 특별한 날은 모두 기념하고 축하하는 전형적인 인도 유치원이었다. 인더스 스쿨에 2년 반을 다녔던 아들은 그곳에서 손으로 밥을 먹는다거나, 짜빠띠를 좋아하게 된다거나, 인도 신들에 대해 배워온다거나 하는 인도의 다양한 문화들을 제법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스쿨만 다녔던 딸아이와 조금 다른 내용의 이런 수업들은, 인더스 스쿨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장점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5명의 여자아이와 우리 아들 한 명, 6명으로 구성되었던 반에 속해 있던 둘째는 말 그대로 여자아이들 사이에 있었기에 별명이 크리슈나였다. 제법 귀여운 얼굴로 여자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는 게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둘째는 어릴 때부터 크리슈나를 가장 좋아했다. 늘 여자들에 둘러싸여있던 사랑의 신 크리슈나. 평생의 연인인 라다와 함께 있는 그림이 유명하지만, 숲속에서 피리를 불며 여인들에 둘러싸인 그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이다.


비쉬누의 화신으로 알려진 크리슈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으로도 종종 표현된다. 버터볼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어, 크리슈나의 생일에는 집집마다 버터볼을 달아둔다. 길거리에는 크리슈나를 상징하는 공작새 깃털과 버터볼을 판매하고 사원에서는 크리슈나를 기념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이날은 아들이 크리슈나를 직접 보고 싶다고 떼를 쓰면서 시작되었다. 마침 동네에 크리슈나를 기념하는 큰 행사가 열려서, 아이들과 나는 기사 하자를 대동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들은 잔뜩 부푼 마음으로 기꺼이 신발도 벗고 맨발로 그곳을 뛰어다녔다. 크리슈나의 사진, 크리슈나의 작은 신상, 아이들을 위한 크리슈나 모형 등 그렇게 다양한 크리슈나를 만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살아 있는 크리슈나를 기대했던 아들은 다소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하자가 큰 소리를 질렀다. "Gijoon, Look at them!!"(기준, 저들을 봐!)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갔다. 맙소사, 그곳에는 크리슈나가 있었다. 'Hi'라고 수줍게 말하던 크리슈나. 6살 둘째도 수줍게 인사를 하며 내 뒤로 와서 숨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크리슈나와 라다로 완벽한 분장을 하고 가던 길이었다. 분장을 하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완벽한 크리슈나와 라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둘째는 살아 있는 크리슈나를 보았다며 잔뜩 들떠 있었다. 크리슈나의 생일날, 크리슈나를 만난 아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리슈나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피리를 부는 흉내를 내며 하리 비탈라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인도에서의 시간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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