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도 민화 배우기

그림을 참 좋아한다.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그렇다고 예술가가 될 만한 감성이나 실력이나 개성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인생을 조금 더 즐기면서 살 수 있는, 평생의 취미로 그림을 즐겨 그리곤 한다.


인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호텔의 벽화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굉장히 화려하거나 웅장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정말 심플 그 자체의 원시적인 그림. 글로 굳이 표현하자면 '졸라맨' 같은 그림이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림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북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민화인 왈리(warli)라고 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을 법한 그림. 그런데 놀랍게도 음양의 조화부터, 그들의 생활상, 종교, 문화, 축제,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신비롭고도 어마어마한 그림. 그렇게 난, 왈리를 시작으로 인도 민화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있던 남인도는 사실 금으로 멋지게 장식한 탄조르 페인팅 외에 북인도에서 성행하는 다양한 인도 민화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북쪽에서 인도 민화 전문가나 장인이 첸나이를 방문해서 진행하는 단기 프로그램이나 강의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참여했다. 언제나 두눈을 부릅 뜨고,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내가 특히 관심이 있던 민화는 곤드 페인팅과 마두바니 페인팅이었는데, 북쪽에서는 이런 교수님들 외에도 다수의 젊은이들이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장신구나, 옷, 가방 같은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의 거주가 점점 더 많아지는 첸나이도 제법 인지도가 높아져, 북인도에서 이런 판매자들이 팝업스토어로 첸나이를 찾는 횟수가, 해가 갈수록 많아졌고, 민화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번 다른 선생님들에게 같은 민화를 배우는 것 또한, 새로운 영감과 새로운 지식을 전수받는 즐거운 일이었다. 전통적인 민화를 따라 그리는 일은, 머릿속을 비우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예술 작품이 아니기에, 창의성과 깊은 생각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나와 잘 맞았다. 민화 안에 담긴 뜻을 배우는 것도, 그 그림을 해석하는 방식도,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더해지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나와 딸이 무척 좋아했던 코끼리 신 가네샤, 아들이 좋아했던 크리슈나 그리고 라다, 하누만과 라마, 시바와 파르바티, 라마야나 등 신화와 인도의 대서사시, 역사를 재해석하며 완성해가는 그림들은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을 선사해 주었고, 단순한 사물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채워주었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그 쾌감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도 끝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인도 민화의 매력은, 인도에 사는 내가 푹 빠질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클럽 프레르나(산스크리트어로 '영감'이라는 뜻이다)라는 인도 민화 정규반을 운영하게 되었다. 나와 감성의 색깔이 맞는 소수의 인원과 함께 매번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민화를 그려나가는 반이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정해지지 않았다. 2020년에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인도 민화 전시회도 기획하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인도 민화는 내 삶의 폭이 더욱 넓어지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면, 자리에 앉아 인도 민화를 그리곤 한다.(참고로 말하지만 나의 종교는 힌두교가 아니다) 문화로 받아들였을 때의 인도는, 지금까지 삶과는 전혀 다른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선사해 준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오늘은 신심 깊은 불교인 지인에게, 부처님 선물을 하려고 펜을 들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 역시 힌두교의 신으로 본다. 아무렴 어떠랴,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은 그대로 나의 신일 것이고, 그들이 품고 있는 신은 그들의 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저 담아내는 나의 마음과 간절한 소망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리는, 한 폭의 그림인 셈이다. 인도 민화는 이렇게 내 삶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인생 취미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복절과 인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